김대식 KAIST교수·뇌과학

장시간 비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다. 여행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지고 지루함과 불편함만 남기 시작한다. '이코노미 클래스 신드롬'이라는 질병으로 인정받는 불편함. 마치 18세기 아프리카에서 신대륙으로 떠나던 배 안에 갇힌 노예들같이 비좁은 공간에 우리는 갇혀 있다. 비행 시간이 10시간을 넘으면 더 이상 짜증 낼 기운조차도 없다.

하지만 장시간 비행의 진정한 '비극'은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야 경험하게 된다. 굳게 잠겨 있던 커튼이 열리고 비즈니스·퍼스트 클래스 좌석을 지나가며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마치 아방궁같이 거대한 공간. 우리 집 침대보다 더 편해 보이는 좌석. 최근 결과에 따르면 비즈니스·퍼스트 클래스를 지나 걸어간 이코노미 클래스 승객의 분노가 통계적으로 가장 심하다고 한다. 장시간 비행이야말로 현대인이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불평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불평등은 왜 존재하는가? 물론 인간은 다양한 능력과 선호도를 가지고 태어나고, 우연의 결과 덕분에 특정 조건의 가족, 나라, 시대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왜 나는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했을까?'라고 질문하면서도 우리는 '왜 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평등을 무작정 '존재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무차별적 평등이 정답일 수도 없다. 건전한 수준의 불평등 없이는 혁신과 변화에 대한 동기 역시 사라진다는 것이 인류 역사의 교훈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혁신과 변화의 동기가 되지 못하는 불평등은 사회에 독이 된다는 사실 역시 역사의 교훈이다. 노력과 혁신을 통해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것이 불평등의 건설적 역할이지만, 만약 이코노미 승객은 영원히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할 수 없다면 우리 모두가 타고 있는 비행기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