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나라와 국가의 본질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국가는 '정당한 물리적 폭력을 독점'하는 기구로 정의된다. 통치력이 미치는 영토 안에서 국가가 군대와 경찰을 운용하는 게 그 증거다. 국가는 폭력 행사에서 내부의 경쟁자를 허용하지 않거니와 자신에 도전하는 범죄 집단을 가혹하게 응징한다. 창궐하는 범죄 조직을 국가가 다스리지 못하거나 국가의 폭력 독점에 맞서는 무장 단체가 폭력을 일삼을 때 내란 상태로 전락한다. 오늘날 시리아나 아프리카, 중남미 등지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국가 폭력은 공권력이라는 점에서 자의적인 사적 폭력과 구별된다. 공적 목표에 봉사하는 '정당한' 물리력이라는 뜻에서다. 제대로 된 나라, 즉 현대 법치국가는 외침(外侵)과 내란으로부터 정치 공동체를 수호하면서 법치주의를 통해 국민의 자유와 생명, 재산을 보호한다. 국가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 궁극적 근거는 국민의 자유·생명·재산을 법이 지켜주는 데서 비롯된다. 내란 상태는 곧 보편타당한 법이 존재하지 않는 무법 상태인 것이다.

국가와 법의 본질에 대한 이런 논의는 결코 한가한 탁상공론이 아니다. 국가와 법의 불가분리성에 대한 성찰은 우리의 뜨거운 현실에 대한 긴박한 진단이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계 구명 로비 의혹은 법의 존재 근거를 의심케 할 정도로 악질적이다. 정 대표에게 수임료 수십억원을 받은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와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의 로비 성공 의혹은 한국 사회에 떠도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속설이 사실에 가까움을 입증한다. 물론 전관예우는 사법부뿐만 아니라 행정부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법원과 검찰이 국민의 인신(人身)과 재산을 직접 통제하는 사법기관이라는 점에서 법조계 전관예우의 사회적 여파는 치명적이다.

일부 상류층 인사가 공공연히 법 '위'에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에 대해 법치국가는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법의 보편성이 위협받을 때 법치에 의존하는 국가의 정당성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법조계 전관예우 관행은 '법은 옳음과 형평의 학문이다'는 법치주의의 대전제를 휴지 조각으로 만든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법의 보편타당성을 갉아먹음으로써 법치주의로 확보되는 사회적 신뢰를 크게 떨어뜨린다. 정부나 법원·검찰 같은 공공 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극히 낮아 '모두가 모두에 대해 늑대가 되는' 한국적 저신뢰 사회가 그 참혹한 결과다.

한국인에게 법은 가까이하기 어려운 경이원지(敬而遠之)의 대상이다.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커다란 칭찬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우리 사회다. 법이 시민적 자유와 권리의 보루로 간주되기는커녕 지배 계층의 통치 수단이나 사익 추구 도구로 악용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법치주의를 국가의 근본으로 삼았다는 오늘날에도 대통령과 재벌, 국회의원 등 사회 지도층이 정말 법 '아래'에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널리 퍼져 있는 실정이다. 법치주의의 수호자여야 할 법원과 검찰조차 법 '위'에 있는 권력기관처럼 비치는 현실이 사태를 한층 악화시키고 있다.

우리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선포한다. 제10조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진다'와 함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전체를 떠받치는 핵심 강령이다. 이는 우리가 법을 준수해야만 하는 까닭을 설명해 준다. 우리가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동의한 법 '안'에서만 시민적 자유와 인권, 평등이 실현 가능하기 때문이다. 헌정 체제의 시민에게 법 '바깥'의 자유와 권리는 무의미한 상상에 불과하다. 현대인은 무인도에 홀로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다.

모든 국가에서 법조인은 기존 체제의 수호자다. 하지만 정운호 로비 사건의 전관예우 관련자들은 우리 체제의 근간을 흔든다는 점에서 반(反)체제 사범에 해당한다. 전관예우는 법의 생명인 공정성을 왜곡하는 데다 국가의 궁극 목표인 정의 실현을 가로막는다. 전관예우 스캔들은 자신의 직분에 헌신하는 법조인을 모독하는 최악의 추문이기도 하다. 결국 법조계의 전관예우 관행은 '법치국가 대한민국'의 적(敵)이다. 일부 전관(前官)·현관(現官) 판검사 사이 공생(共生)·유착의 산물인 전관예우는 국가와 법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법의 정당성을 뿌리째 흔드는 전관예우는 전관 특혜이자 전관 범죄이므로 즉각 혁파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