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피아니스트

계절이나 날씨에 어울리는 클래식 작품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다. 정말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늘 다루고 접하는 음악을 특별히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 맞춰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어서다. 일 년 내내 비슷한 곡을 가르치고, 콩쿠르 심사를 할 땐 하루에 같은 곡을 50차례 이상 듣는 직업 음악인이 음악에 대한 '계절 감각'을 키우기란 쉽지 않다.

"봄엔 생기 넘치는 비발디의 협주곡이 어떨까요? 가을엔 어딘지 쓸쓸한 느낌의 브람스가 좋고요…." 인터넷에 검색하면 쉽게 알 수 있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나 자신을 보면서 언제든 펼치기만 하면 가장 알맞은 곡을 찾아주는 '선곡(選曲) 사전'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싶다.

아주 오래된, 잠 안 올 때 듣는 음악으로 알려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있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카이저링크 백작이 치유를 목적으로 바흐에게 부탁한 곡이다. 서양 음악사를 길이 빛내는 걸작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복잡한 변주곡 형식과 화려한 테크닉 때문에 감상하다가 오히려 잠이 깰까 봐 염려되기도 한다.

바흐 작품은 대자연과 함께 듣는 음악으로 추천하고 싶다. 그의 합창곡들은 언제 들어도 감동적인데, 깊은 산속에서 홀로 들으면 이 위대한 인물이 인류를 위해 해놓은 업적을 실감하게 된다. 우울해서 눈물이 날 땐 차이콥스키의 관현악을 들어보자. '비창' 교향곡을 포함한 그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비극적 정서의 폭발이 날 대신해 펑펑 울어주는 느낌이다. 로맨틱한 순간엔 말러 교향곡 5번에 나오는 '아다지에토' 악장을 들어보시라. 작곡가가 아내 알마를 떠올리며 썼다는 이 느린 악장엔 사랑의 온갖 감정이 녹아 있다.

그러다 삼라만상보다 복잡한 사람의 기분을 맞추는 음악을 찾는 게 과연 가능할까 싶은 회의가 든다. 바로 이 순간, 모든 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은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피아노 협주곡들이다. 최고의 천재가 만든 이 작품들은 인류 최고의 유산이다. 하긴 어떤 곡인들 무슨 상관이랴. 음악이 필요한 때, 귓가를 맴도는 음악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면 그 순간이 낙원이고 천국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