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사회부 차장

의뢰인과 전관(前官) 변호사의 '수임료 50억 공방'으로 시작된 법조 비리 막장 드라마의 등장인물이 갈수록 늘고 있다. 100억대 해외 도박 혐의로 재판받는 기업인, 부장판사와 검사장 출신 변호사, 법조 브로커가 이끌어가는 듯싶더니, 금융 사기범과 브로커 사무장이 새로 가세했다.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어쩌다 재판이 도박판같이 됐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도박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나 유사 수신 사기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이숨투자자문 소유주 송모씨는 보석(保釋)이나 집행유예로 감방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변호사비 수십억원쯤은 아깝지 않다고 여겼을 것이다. 기업을 상장(上場)하거나 새 사업을 벌이면 그 돈보다 수십, 수백 배 더 벌어들일 수 있을 거라는 '대박 꿈'을 꾸면서.

진동하는 돈 냄새를 감지한 법조 브로커들이 바람잡이로 나섰다. 브로커들은 '전관예우' '수사 검사의 선배' '재판장과 친분' 같은 히든카드를 손에 쥔 전관 변호사들을 끌어들여 '타짜' 역할을 맡겼다. 대형 법조 비리는 대개 이처럼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는 피고인, 그 돈의 노예가 된 변호사, 법조 브로커들의 음습한 뒷거래가 만들어낸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대다수 법조인의 심정도 국민과 다르지 않다. SNS에 올라온 법조인들의 글에는 황당함, 허탈함, 분노 같은 감정이 담겨 있다. 어떤 판사 출신 변호사는 "퇴직 후 형사 사건은 멀리하고 민사만 맡기로 한 건 지금 생각해봐도 잘한 일"이라고 썼다. 변호사 1인당 연간 수임하는 사건이 2건도 되지 않는 게 변호사 업계의 현실이다. 변협(辯協)이 이번 사건 연루자들을 검찰에 고발하고 특검까지 하자고 한 데는 '보통 변호사들'의 분노가 반영돼 있다고 봐야 한다.

진상은 검찰이 밝혀낼 것이다. 그러나 과거 그랬던 것처럼 법조계가 이번 사건을 일부 변호사의 일탈(逸脫) 행위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간다면 똑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법원은 그동안 전관예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전관예우는 사건 당사자들의 잘못된 기대심리일 뿐 실체가 없다'는 식으로 대응해왔다. 법원 고위직을 지낸 어떤 분은 "오히려 전관박대(薄待)"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부장판사였던 사람이 법원 문을 나서기 무섭게 재판장에게 스스럼없이 전화하고, 현직 판사들과 맺은 친분을 내세워 '수임료의 여왕'에 올랐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

'법조 비리 척결'을 외치던 검찰 간부들은 퇴직하자마자 검찰청 담장 아래 앞다퉈 변호사 사무실을 냈다. 그러고는 검사 시절 맡았던 보직(補職)에다 출신 학교·연수원 기수는 물론 심지어 사무장 이름까지 넣은 개업 광고문을 돌렸다. 검찰이 2011년 만든 '공직 퇴임 변호사 수임 제한 위반 신고센터'엔 5년간 신고가 131건 들어왔지만, 모두 '문제없음'으로 종결됐다. 검찰 내부에서 휘슬을 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뜻이다.

형법의 도박죄는 도박한 사람보다 도박장을 차려 도박하도록 부추긴 사람을 더 엄하게 처벌한다. 법원과 검찰은 도박장 개설까지는 아니더라도 곳곳에서 벌어지는 법조 비리 도박판을 방치한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