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서울메트로 등 산하 15개 공기업에서 사실상 노조가 추천하는 근로자 1~2명씩을 비상임 이사로 선임하는 근로자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는 공청회를 거친 뒤 조례를 고쳐 10월쯤 근로자 이사를 임명할 계획이라고 한다.

근로자이사제는 협력적 노사 관계에 토대를 둔 유럽식 제도로 독일·스웨덴·프랑스 등 18개 유럽 국가들이 시행 중이다. 기업 경영에 종업원 대표가 참여하면 노사 갈등과 분쟁이 줄어들고 현장 목소리가 경영에 반영돼 제품과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취지다. 특히 독일은 제조업 강국으로 올라서는 데 이 제도를 적극 활용했다. 서울시의 근로자이사제가 노조와 근로자를 경영의 감시자이자 협력자로 참여시킴으로써 공기업 경영에 건설적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노사 문화가 이 제도의 좋은 취지를 살려나갈 정도로 성숙해 있는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서울시 산하 15개 공기업 노조가 합리적이고 협력적이냐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지난 3월 서울메트로노조는 서울시가 추진했던 서울도시철도와의 통합을 반대해 실력으로 무산시켰다. 비용을 줄이고 경영 효율을 높이자는 철도공사의 합병이 노조의 이해관계 탓에 어그러진 것이다.

재계는 "방만한 공기업 경영이 더욱 망가질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가 이 제도를 도입하면 대기업의 강성 노조들도 이사 자리를 요구할 것이라며 연쇄 부작용도 우려했다. 일리 있는 얘기다. 이미 현대중공업노조는 노조 몫의 사외이사 자리를 내놓을 것을 요구 사항에 올려놓기도 했다.

그동안 대기업·공기업의 강성·귀족 노조가 보여준 온갖 비상식적 갑질 행태를 보면 노조의 경영 참여가 이상(理想)대로 순기능을 발휘할지에 대해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시가 근로자들에게 의사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주고 싶다면 협력 대신 투쟁을 앞세우고 정치적 이유로 경영의 발목을 잡는 귀족 노조들 행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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