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한국의 고대 왕국 신라의 공주가 페르시아 왕자와 사랑을 나누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자 1600여 명의 관중이 큰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이란 수도 테헤란의 밀라드타워에서 개최된 한-이란 문화 공감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양국의 역사적 스토리를 말했을 때 나타난 반응이다. 행사장 옆자리에 앉은 이란 여성은 우리나라의 역사, 여성 대통령, 드라마, 음식 등에 관해 내게 쉴 새 없이 질문을 해왔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대통령의 이번 이란 방문에 맞추어 우리의 음식 문화를 알리기 위해 현지인 대상으로 김치 만드는 체험 행사를 열었다. 신청 인원을 제한해야 할 정도로 희망자가 많았고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150여 명의 이란 여성은 직접 김치를 만들며 신기해했고 김치의 조리법과 구매 방법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다. 우리 음식에 대한 이란 여성들의 적극성은 이란에 대해 가졌던 폐쇄적 편견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이란은 8000만명이 넘는 인구, 한반도의 8배나 되는 면적을 가진 나라다. 세계 상권을 좌우했던 '페르시아 상인'의 후예로서 이란 국민이 갖고 있는 자국의 역사와 문화적 자부심은 대단하다. 이런 이란에 한식이 가진 건강함과 식문화의 우수성을 인식시킨다면 우리에게는 큰 시장이 될 수 있다. 드라마 '대장금'이 이란에서 9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한 이유 중 하나가 드라마 속 음식들이 이란인들의 정서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이른바 '약식동원(藥食同源)'의 한국 음식 기본 철학은 건강식을 선호하는 이란 국민의 식품 소비 경향에도 부합한다. 전통적으로 가족끼리 집에 모여 식사하고, 곡물 소비가 많으며, 매운맛을 좋아하고, 제철 과일과 채소를 즐기는 점도 우리와 유사하다.

대통령의 이란 방문으로 한국 식품이 이란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토대는 마련됐다. 이제는 긴 안목으로 먹거리와 음식 문화의 교류를 확대할 때다. 건설과 에너지, 보건 의료 등 경제협력을 통한 교류는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이지만, 음식을 비롯한 문화 교류 협력의 효과는 비록 보이지는 않더라도 경협 못지않을 것이다. 어쩌면 경제협력보다 더 오래가는 튼튼한 교류 기반이 될 수도 있다. 21세기 신(新)실크로드를 통해 이란에 한국 음식 문화를 진출시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