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부녀자 일곱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 강호순이 붙잡혔을 때 사람들은 두 번 놀랐다. 희생자를 모조리 목 졸라 죽이고 암매장한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선하디선한 얼굴에 또 한 번 모골이 송연해졌다. 공개된 사진 속 그는 개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만하면 준수한 외모였다. 살인극이 끝나면 그는 평범한 30대 청년으로 돌아가 가축을 기르고 스포츠 마사지사 일을 했다. 이웃들은 "친절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아무도 얼굴에 숨겨진 악마성을 눈치채지 못했다.

▶강호순을 보면서 사람들은 '귀공자형 연쇄 살인마' 테드 번디를 떠올렸다. 1970년대 미국에서 번듯한 외모를 앞세워 여성을 서른 명 넘게 죽인 살인범이다. 대학을 나온 그는 다친 척하며 여성에게 다가갔다. 관심을 끈 뒤엔 차례차례 숨을 끊어놓았다. 교도소에서 탈옥하기도 했고 수감 중에 자신을 따르는 여성과 결혼도 했다. 그러나 결국엔 전기의자에 앉아 생을 끝냈다. 우리나라에도 크게 알려진 '착한 얼굴의 악마'였다.

▶엊그제 구속돼 신원이 공개된 '안산 대부도 토막 살인 사건' 피의자 조성호도 번듯한 얼굴을 한 서른 살 청년이다. 망치로 사람을 때려죽이고 시신을 훼손했다고는 믿기 어렵게 순수해 보인다. 옆집 총각처럼 생겼다. 대인 관계도 원만했고 한때 애견 카페를 운영했던 성실한 청년이었다고 한다. 그는 범행 뒤에도 페이스북에 10년 인생 계획을 올리며 평범한 남자인 듯 행세했다. 돈벌이 얘기 끝에 "이런 식이면 10년 3억 가능하겠구먼" 하는 글도 남겼다.

▶연쇄 살인범과 흉악범의 가장 무서운 특징은 평범한 사회 일원처럼 보이는 것이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신뢰를 쌓으려는 방편이다. 1978년 미국 사회에 충격을 던진 '광대 살인마' 존 웨인 게이시도 그랬다. 그는 광대 분장을 하고 어린이를 돌보는 봉사 활동을 했으나 실상은 남자 아이와 청소년 서른셋을 죽인 살인마였다.

▶우리는 '범죄형 얼굴'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실제로 과거엔 외모만으로 범죄형 인간을 판단하려는 연구도 있었다. 범죄학 창시자라고 부르는 이탈리아 법의학자 체사레 롬브로소는 범죄자의 얼굴 생김새, 즉 관상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큰 귀, 툭 튀어나온 이마와 광대뼈, 긴 팔이 범죄자 특징이라고 했다. 죄수들의 신체적 특징을 관찰한 결과다. 강력계 형사 중에도 이런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과학적 근거는 부족해 보인다. 어쩌면 평범함 속에 숨은 악(惡)이 더 무섭고 끔찍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