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고문

'난세(亂世)에 영웅(英雄)이 난다'는 말이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인재가 돋보인다는 말의 역설일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을 둘러싼 정세는 난세까지는 아니더라도 가히 혼세(混世)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영웅이 보이지 않는다. 영웅까지는 아니더라도 믿고 나라를 맡길 인재가 없다는 말이다.

국내는 심각한 전환기에 빠져들고 있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정권 말기에 이르러 더욱 힘을 잃어가고 있다. 대통령의 '소통 부재'는 이제 시중(市中)의 논쟁거리도 아니다. 국회는 여소야대로 바뀌었다. 그냥 바뀐 것이 아니라 오만과 교만과 안하무인이 정가의 중심에 앉아 있다. 정당의 리더십은 지금 '투쟁 중'이다. 참패한 여당은 여전히 친박-비박 싸움이고 승리한 야당은 '운동권 진행형'이다.

국론(國論)이란 것이 있다. 우리는 근자에 그런 국론의 합일이라는 것은 가져본 적이 없다. 나라가 어려울 때 서로 다른 점은 잠시 접어두고 큰 것에서 접합점을 찾는 지혜를 우리는 잊은 지 오래다. 온통 나라가 논쟁적이고 투쟁적이고 사생결단적이다. 여당이 야당 같은 소리를 해 본 적이 없고 야당이 여당 같은 소리를 한 적도 없다.

김정은 치하의 북한은 그 어느 때보다 호전적(好戰的)이다. 핵과 미사일 그리고 장사정포로 무장한 김정은 집단은 단순한 종이호랑이가 아니다. 유엔의 제재로 궁지에 몰린 서른두 살의 객기는 언제 폭탄 버튼을 누를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전율하고도 남을 상황인데도 이 땅에 사는 지도자급 인사들은 이렇게 태평성대일 수 없다. 우리의 무감각은 가히 질병 수준이다.

세계의 흐름도 호의적이지 않다. 금년 말 대통령 선거로 구성되는 미국의 새 리더십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한·미 관계는 전면적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주한 미군 주둔 비용의 막대한 증가, 미군의 철수, 핵무기 관련 문제 등은 한·미 동맹 관계의 유지에 중대한 변수가 될 것이고 FTA 수정 문제 등은 한·미 경제 관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이기는 경우라도 트럼프가 제기한 '미국 우선주의' 바람은 미국의 대외 정책 변화의 저류를 형성할 것이다. 미국의 변화는 일본과 중국의 변화를 유도할 것이다. 아시아 전체의 판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나라를 이끌고 나갈 강력한 리더십의 존재다. 그냥 리더십이 아니라 국민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고 국민의 마음을 다잡아 갈 수 있는 그런 통합적 리더십 말이다. 지금 우리에겐 그런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대통령 지망자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상황이 어려울수록 국민적 공감대와 신뢰도가 돋보이는 인물, 주변 정세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와 조정력을 가진 인물, 무엇보다 국민에게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그런 인물로 거듭나는 변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앞으로 한·미 동맹 구조는 어떻게 재조정할 것인가, 핵무기 문제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대북 문제에는 어떤 원칙으로 임할 것인가, 대일·대중국의 변화에는 어떻게 임할 것인가―산적한 대외 안보 문제에 강한 신념과 의지와 실천력을 지닌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국내 문제에서도 세계경제의 높은 파고, 청년 실업, 고령화, 복지의 역경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사회 계층·집단 간의 갈등과 대립을 어떻게 통합해 나갈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고 숙고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무엇보다 국민에게 믿음과 감동을 주고 국민과 친화(親和)하는 인간다운 지도자,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바로 그런 지도자다.

하지만 현실을 둘러보면 우리 정치권은 온통 막말, 말장난, 거짓말, 상호 비방, 잔재주로 넘쳐난다. 좀 뜬다 하면 너도나도 '대권' 운운하고 나온다. 어쩌다 '대권'이 저잣거리 상투어가 됐는지 모를 일이다. 하긴 '누구누구도 대통령 했는데 나라고 못 할 이유가 없다'고 할 만하다. 대권의 명예가 추락하고 있고 나라를 구할 '영웅'의 존재가 퇴색하기는 했다. 지금은 영웅이 나올 만한 난세가 아니라는 말인가.

세계는 바야흐로 지도자의 돌연변이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는 상식을 깨고 몰상식으로 표를 얻고 있고 그런 현상은 필리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영국의 런던은 무슬림 이민자 출신을 시장으로 뽑았고,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도 일종의 변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미래와 정책을 보고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이라기보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분노의 표시로 '역주행'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런 기운이 우리에게도 전염(?)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