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자마자 길에 버려진 하반신 불구의 여성이 휠체어를 타고 40여 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안타깝게도 부모는 만나지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최초로 자신을 발견했던 경찰관을 만날 수 있었다. 피붙이는 아니었다. 기억조차 자리하지 않은 어린 시절 스쳐갔을 찰나의 인연이지만 그녀에게는 삶의 퍼즐을 완성하는 한 조각이었고 따뜻한 위로였다. 중앙입양원 신언항 원장이 이들의 만남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자신의 뿌리를 찾는 해외 입양인들의 애타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입양인들이 부모와 가족을 찾고 싶어 합니다. 부모님은 어떻게 생겼을까, 성격은 어떨까, 나와 얼마나 닮았을까 상상하고 궁금해하죠. 실제로 가족을 만나 닮은 점을 발견할 때면 상당한 위안을 얻는다고 해요. 자신의 뿌리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죠. 여러 사정에 의해 가족은 못 만나더라도, 잠시 돌봐줬던 시설 관계자나 위탁모와의 만남도 큰 힘이 된다고 합니다. 잠시였지만 사랑받았고, 이렇게 예뻐하던 사람이 있었다는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위로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중앙입양원은 입양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온기 가득한 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한국전쟁 이후 30만 명 이상의 아이들이 국내외로 입양됐고, 그중 국외 입양이 16만7천여 명에 달한다. 이들이 성인이 되던 90년대부터 해외 입양인의 국내 방문이 증가했고 한국 정부에서는 친부모 찾기를 지원하는 입양지원센터를 설립했다. 보다 확실한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맞춤 서비스 마련을 위해 2011년 9월 개정·공포된 입양특례법 제26조에 의거해 설립된 재단법인이 바로 중앙입양원이다.

“뿌리를 찾아 한국을 방문하는 해외 입양인들에게는 작은 단서라도 큰 의미를 갖게 됩니다. 따라서 입양 관련 서류나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보관되고 영구 보존되도록 관리가 필요한데 이 역할을 중앙입양원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중앙입양원은 4대 해외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와 연계해 해당기관이 가지고 있는 입양 기록 중 부모를 찾는 데 필요한 51개 항목을 뽑아 데이터베이스를 만든다. 2013년부터 시작해 8만여 명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상태다. 이를 바탕으로 입양인 부모의 현 거주지를 추적하고 만남을 주선한다. 그러나 실제 만남까지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환갑 앞두고 입양한 막둥이…애틋하고 대견

보건복지부 차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 등을 거쳐 2012년 12월에 초대 중앙입양원장으로 부임한 신언항 원장은 2007년 한국입양홍보회 이사를 맡았을 만큼 부임 전부터 입양에 관심과 애정이 많았다. 마음으로 입양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역시 가슴으로 낳은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일 터. 2005년 막내 동영 군을 입양해 어느덧 11년을 키웠다. 환갑을 앞두고 가족의 일원이 된 막둥이는 그의 삶의 전환점이며, 새로운 활력을 선사하고 있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도 참 잘했다 싶은 입양이다.

“아내가 오랫동안 보육원 봉사활동을 다녔는데 유독 눈에 밟혀하던 아이가 우리 막내예요. 보육원에 안타까운 사연 없는 아이가 있겠느냐마는 깊은 애착을 보이며 지켜보더군요. 저도 아내를 따라 보육원에 가서 막내를 보는데 마음이 많이 쓰였어요. 아내와 서로 입양에 대해 말한 적은 없지만, 속으로는 내가 받는 연금의 3분의 1만 쓰면서 살면 저 아이 하나는 충분히 키울 텐데 싶더라고요. 그렇게 네 살이 될 때까지 지켜보다가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이 됐죠.”

이미 장성한 아들 둘이 있던 신 원장 내외는 그렇게 늦둥이 부모가 됐다.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된 동영 군 이야기가 나오자 신 원장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공무원 퇴직 후 편안히 여유를 즐길 나이에 고생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새로운 마음으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이 들어서 입양을 하니 훨씬 더 편하고 여유가 생겼어요. 혈기 넘치는 30~40대였다면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세상살이에 너그러워진 나이라 그런지 아이의 성장이 그저 즐겁고 축복과도 같아요. 물론 젊은 부모처럼 액티브한 활동은 같이 못하죠. 축구라도 같이 하려면 애를 따라갈 수가 없거든요. 그래도 참 좋습니다.”

그래도 아이 키우는 부모 마음은 매한가지다. 가슴으로 낳은 아이나 배 아파 낳은 아이나 똑같이 혹여 다치거나 아프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런 신 원장 내외의 마음을 아는지 속 깊은 막내는 부모 속 한 번 썩이지 않는다. 생각 외로 입양에 대한 편견 때문에 마음 아픈 일도 없었다. 그래서 동영 군을 생각하면 기특하고 더 애틋하다.

“한창 사춘기를 겪을 나이인데 말썽 한번 안 부려요. 키워주는 부모에게 빚진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빨리 성공해서 엄마, 아빠 호강시켜주겠다고 하네요. 공부를 썩 잘하지는 않았는데 파일럿이 되겠다는 꿈을 품은 요즘은 매일 독서실에 가서 11시에 오더라고요. 최근 학부모 상담 때문에 학교에 다녀왔는데, 담임선생님 말씀이 우리 애가 친구들 사귀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요. 어찌나 뿌듯하고 대견하던지요.”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워내는 일, 공동체의 의무

아이를 입양해 키워보니 입양은 공동체 일원으로서 모두의 의무이자 책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환경, 어떤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라도 사랑받으면서 자랄 권리가 있다는 것이 신 원장의 지론이다. 그 아이들의 개성을 지키고 존중하면서 사랑으로 키워내려면 가정이 필요하다.

“요즘 군대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다시 가라면 갈까요? 안 가겠죠. 왜일까요? 단체생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개성을 죽이고, 어쩔 수 없이 획일화해야만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에요. 사람은 개성을 드러내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 생명과 바꿀 정도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존재가 부모죠. 아이를 입양한 부모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런 사랑을 받으며 아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에 입양이 더욱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건복지부가 5월 11일을 입양의 날로 정한 이유도 가정의 달 5월에 1가정이 1아동을 입양해 새로운 가정(1 + 1)으로 거듭난다는 취지를 살린 것이다. 매년 입양의 날이면 천여 명의 입양 아동과 가족들이 행사에 모이는데, 그때마다 입양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기를 바라는 신 원장의 마음은 더욱 커진다.

“입양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사랑으로 양육해 사회구성원으로 다시 내보낸다는 의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누구나 똑같이 소중하고, 좋은 어른으로 자랄 수 있는 소질을 가지고 있어요. 그 소질을 피워내는 게 우리가 할 일이겠죠.”

그래서 중앙입양원이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다. 장기적으로는 입양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며, 보다 현실적으로는 국외 입양인들과 그의 후손들이 한국에 와서 발자취를 찾을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함께 종합지원센터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어떤 상황에 처했건 우리가 낳은 자식을 남의 손에 맡겼다는 것은 미안한 일이죠. 그런 아픔을 한국 사회가 어루만져줘야 합니다. 해외 입양인들과 그 후손들을 통해 어떤 위대한 인물이 나올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한국이 입양인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자료를 잘 보관하고 기틀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 더 많은 기사는 여성조선 5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