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호 워싱턴특파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누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일 '트럼프 불가론'을 외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도, 졸업식 축사 때도 그는 야당의 사실상 대통령 후보를 난도질한다. 6일에는 트럼프가 리얼리티 쇼 진행을 맡았던 것을 빗대 "대통령직은 연예가 아니다"라고 했다. 최근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에서는 "내년에는 다른 사람이 이 자리에 서게 될 텐데, 그녀(she)가 누구일지 아무도 모른다"고 여성 대통령 탄생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까지 했다. 존 케리 국무장관도 노스이스턴대 졸업식에 참석해 "다양성은 트럼프에게 최악의 악몽"이라고 야권 후보를 대놓고 비난했다.

한국에서는 그런 식으로 특정 후보를, 그것도 대권 주자를 비판했다가는 탄핵을 당할 수도 있다. 무조건 정치적 중립을 취해야 하는 의무가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자유로움은 주장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은 4000㎞가 넘는 서부 캘리포니아까지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을 타고 다니면서 민주당 후보 선거지원도 하고, 수백만달러씩 걷는 자금모금 파티에도 참석한다. '있는 사람들'만 은밀하게 조용히 참석하는 비공개 행사를 한 달에도 몇 번씩 치른다. 일부 보수 언론이 문제를 제기해보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런 활동 자체를 대통령 고유의 정치활동으로 본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정치인을 한 명이라도 더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그래야 대통령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의회에 자신의 정책을 더 원활하게 펼칠 수 있도록 법안 통과를 요청하고, 협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상·하원을 모두 공화당이 장악한 가운데서도 나름대로 자신의 이민정책과 각종 차별 철폐 조치, 최저임금 인상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의회를 설득할 부분은 설득하고, 우회경로를 통할 수 있으면 그렇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다. 기본은 소통이다. 수시로 야당의원에게 전화하고, 백악관으로 불러 도와달라고 무릎을 맞댄다. 최근 후임 대법관 인준을 위해 오바마는 10여 명의 상원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설득작업에 나섰다. 특히 협조적인 의원보다는 절대 인준 동의를 할 수 없다는 의원들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우리 같으면 야당 의원 매수나 협박으로 오해받기에 십상이고, 그런 시도조차 없겠지만, 그렇게 오바마식 정치를 만들어낸다. 한국 대통령도 사실은 최고 지위의 정치인이다. 그런데도 마치 입법·행정·사법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전지전능한 도덕군자처럼 만들어놓다 보니 유연한 접근이 어렵다.

한때 날카롭게 대립하던 공화당 소속인 존 베이너 전 하원의장과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 중간에 내보내기 위해 '영화'도 한 편 찍었다. 은퇴를 미리 선언한 베이너에게 임기 종료를 앞둔 오바마가 앞으로 뭘 하고 살아갈지 진짜 영화를 보면서 다정하게 논의하는 그런 장면이었다. 정부 폐쇄라는 극단적인 조치까지 겪었던 두 사람이지만, 골프 친구, 술 친구로 정파를 떠나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이기도 했다. 앞으로 열릴 여소야대 국회에서 꼭 필요한 게 미국식 솔직함이다. 법안을 왜 통과시켜주지 않느냐고 국회 탓만 하기보다 대통령 스스로 나라님이라는 무게감을 덜고 가볍게 정치 행보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