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머리카락이 날리는데 괜찮나요?"

사진 촬영을 위해 카메라 앞에 선 김연경(28)이 물었다. "상관없다"고 하자 김연경은 "제가 안 괜찮은데요"라고 했다. 머쓱한 기분이 들며 문득 그가 후배들 사이에서 '센 언니'라 불린다는 얘기가 실감 났다. '센 언니'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직설적으로 말한다고 붙은 그의 별명이다.

코트 밖에서의 김연경은 뒤끝 없고 시원한 성격이다. 한국 올 때마다 후배들 불러 밥도 사고, 경기 조언도 해 준다. 하지만 '센 언니'는 코트 위에선 선후배를 가리지 않는다. 2014년부터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은 그는 경기 도중 선배가 잘못하면 "언니, 뭐하시는 거예요. 똑바로 하세요"라고 쏘아붙인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에요. 어렸을 땐 예의가 없다거나 건방지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죠. 그래도 코트에선 선후배가 없어야죠."

17세 김연경이 2005년 국내 여자배구 프로 무대에 데뷔했을 때 배구계에선 “앞으로 10년은 김연경이 배구판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11년이 지난 지금 김연경은 한국·일본·터키 리그를 제패하며 세계 정상의 선수가 됐지만, 아직 한국에서 그를 넘어설 재목이 나오지 않았다. 3일 논현동의 한 카페 계단에서 앉아 긴 다리를 쭉 펴고 앉은 김연경.

한국과 일본, 터키 무대를 평정한 '여자 배구계의 메시' 김연경이 리우올림픽 세계예선전 출전을 위해 귀국, 4일 대표팀이 훈련 중인 진천선수촌에 합류했다. 오는 14~2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예선전에는 한국·일본·카자흐스탄·태국 아시아 4개국과 이탈리아·네덜란드·도미니카·페루를 포함해 총 8개국이 참가한다. 이 가운데 가장 성적이 좋은 아시아 한 팀과 이를 제외한 상위 세 팀이 리우행 티켓을 거머쥔다. 2015~16시즌 소속팀 페네르바체를 준우승에 올려놓은 그를 3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천하의 김연경도 2011년 터키 진출 초기엔 텃세에 눌려 주눅이 들었다고 했다. "저한테 먼저 말을 걸지도 않고, 훈련 때는 공도 안 올려주더라고요." 며칠 고민 끝에 '김연경답게' 돌파해 나가기로 했다. "제가 실수라도 하면 동료가 터키어로 뭐라고 하는데, 분명히 욕이더라고요. 그러면 나도 한국 욕으로 맞받아쳤죠. 욕인 줄 알아듣고 찔끔하던데요." 프로 세계에서 결국은 실력이 모든 걸 말한다. 192㎝의 큰 키에서 내리꽂는 김연경의 강력한 스파이크는 상대뿐 아니라 동료의 기도 꺾었다. 터키에서는 2011년부터 5시즌을 뛰었고, 지금은 완벽하게 적응했다. 초반엔 언어 장벽도 큰 난관이었다. "통역이 따로 없어 첫 시즌에는 무슨 경기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뛰었어요. 매 경기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뛰다 보니 시즌이 끝나 있더라고요."

환호하는 김연경. 득점하면 경기장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소리를 질러 상대의 기를 죽인다.

김연경의 소속팀 페네르바체는 한국 프로배구에서 흔히 말하는 '몰빵 배구'를 한다. 한국 프로팀이 한 명의 외국인 공격수에게 공격을 몰아주듯 페네르바체는 김연경에게 공격을 몰아준다. 팀의 선수 영입과 전략이 모두 김연경을 위해 맞춰져 있을 정도다. 페네르바체에는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김연경만을 위한 응원 구호가 있다. 그가 서브를 넣을 때마다 팬들이 "킴(Kim)! 킴! 킴! 킴!"이라고 주문을 외우듯이 외친다. 열성적인 걸로 소문난 페네르바체 팬들은 그를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에 태극기도 들고 나온다. "터키 리그 라이벌팀한테 영입 제의가 오기도 했는데 거절했어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라이벌 팀에 갔다간 팬들한테 맞을 것 같았어요."

20대 초반까지 커트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코트를 누비던 그는 20대 중반을 넘어서며 머리를 길렀고 치마도 입는다. 최근 연애가 언제였냐는 질문엔 "아이~ 왜요~"라며 처음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제가 키가 크다 보니까 아무래도 저와 비슷한 키의 남자를 찾게 된다"며 "올해는 연애가 잘 안 되는 것 같다"며 웃었다.

김연경은 2012 런던올림픽에서 약체라는 한국을 4위까지 올려놓은 일등공신이다. 그는 리우올림픽에선 반드시 메달을 따겠다는 목표다. "런던올림픽 3·4위전에서 일본에 지고 분해서 잠을 못 잤어요.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각오로 꼭 3위 안에 들어 메달을 가져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