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동쪽 끝자락인 강동구 길동생태공원. '곤충박사' 정부희(53) 고려대 한국곤충연구소 연구교수는 지난달 27일 인터뷰 장소에 DSLR(디지털 일안 반사식)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전북 완주와 강원도 춘천, 민통선(民統線)까지 1주일간 세 곳을 답사하는 강행군 내내 한 번도 그의 손을 떠난 적이 없었던 카메라다. 렌즈 양쪽 끝에는 외장형 플래시 두 대까지 설치되어 있다. "길이 2~3㎜에 불과한 곤충 녀석을 이 카메라로 접사 촬영하죠. 바람이라도 불어서 흔들리면 30장을 찍어도 성에 차는 건 딱 1장뿐이에요."

곤충 사진을 잘 찍는 법을 묻자 정 교수는 "사람 사진을 촬영할 때와 같다. 곤충과 서로 눈을 맞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2001년부터 8년간 이 공원에서 생태 해설가로 자원 봉사했다. 그는 공원을 걸을 때에도 곤충 서식지가 보이면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왕벼룩잎벌레는 애벌레일 때에도 자신의 똥을 꽁무니로 밀어서 온몸을 뒤덮는 전략으로 새와 개미 같은 천적의 공격을 피해요. 곤충의 세계에는 결코 우연이 없죠."

정부희 고려대 한국곤충연구소 연구교수는 “겨울자나방은 한겨울에 허공에서 짝짓기를 마치면 수컷은 곧바로 죽고 암컷도 갈참나무 줄기에 알을 낳고 죽는다”면서 “사람이 아무리 고생스럽다고 푸념해도 곤충만큼 힘들지는 않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2010년 '곤충의 밥상'을 시작으로 지난달 '갈참나무의 죽음과 곤충 왕국'(상상의숲)까지 6권의 책을 자신의 이름으로 펴냈다. 이 시리즈의 이름은 '정부희 곤충기'다. 이 책 외에도 학술서와 어린이 책까지 별도의 6권도 펴냈다. 곤충 관련 서적으로는 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하는 셈이다. 그래서 그의 별명도 '한국의 파브르'다. 정 교수는 "곤충의 성(性)과 똥, 생존전략까지 앞으로 4권을 더 써서 총 10권으로 '정부희 곤충기'를 완간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지구상의 곤충 100만종 가운데 한반도에는 대략 1만3000종이 산다. 이 곤충들의 '조상(祖上)'을 확인하고 '족보(族譜)'를 따지는 분류학이 그의 본업이다. 정 교수는 "온대 지방인 한반도의 곤충들은 화려한 열대 곤충에 비해 수수하고, 덩치가 작으며, 독성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한민족의 품성과도 어쩐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충남 부여에서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밤마다 등잔불을 켰던 산골이었다. 인가가 드문 산촌(散村)에서 그는 밤마다 별을 보며 잠들었고, 녹은 얼음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봄을 느꼈다. 이화여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지만, 불혹(不惑)이 된 2003년 성신여대 생물학과 대학원에서 다시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정 교수는 "문과 출신인 데다 학업 공백도 길었고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점까지 '약점투성이'였지만, 배움에 대한 갈증이 너무나 컸다"고 했다. 걸음마 할 때부터 그와 함께 현장 답사를 했던 두 아들은 수의학과 곤충학을 각각 전공한다. 정 교수의 전공이 딱정벌레목(目)의 거저리과(科)라면, 둘째 아들은 같은 목의 어리방아벌레과로 사실상 전공도 '이웃사촌'이다. 정 교수는 "요즘엔 현장 답사에 갈 때마다 둘째 아들이 운전을 해준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이 주제로 늘 대화하기 때문인지, 그의 글에는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우선 퇴절(腿節·넓적다리마디)이나 경절(脛節·종아리마디) 같은 어려운 한자 용어들을 순 우리말로 풀어서 쓴다. 또 엄마가 아이에게 곤충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대화체가 많다. 정 교수는 "멀리서 보면 우리는 나무·곤충·새와 큰 차이가 없는 자연의 일원"이라며 "곤충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통역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