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행으로 치닫던 부산국제영화제가 실마리를 찾고 있다. 김규옥 부산 부시장은 4일 "영화제 조직위원장을 결정하는 문제는 강수연 집행위원장의 결정을 따르겠다. 단, 김동호〈사진〉 명예집행위원장이 조직위원장을 맡는 것도 찬성한다"고 했다. 조직위원장 선임은 영화제와 부산시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큰 쟁점 중 하나였다.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영화적 전문성과 영화제 실무 능력을 모두 갖춘 적임자를 찾는 논의를 계속 하고 있다"고 했다.

김 명예위원장은 영화진흥공사 사장, 문화부차관,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원장,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등을 지낸 공무원 출신 영화 전문가다. 영화계에서 신망이 두텁고, 행정 능력도 탁월하다는 평이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조직위원장 후보 논의 과정에서 김동호 명예위원장이 강력한 후보로 나온 것이 맞다"고 했다. 김 명예위원장은 "아직 아무 제안도 받은 적이 없다. 수락할지 말지는 제안을 받은 뒤에 고민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조직위원장은 부산시장이 당연직으로 맡아왔다. 앞서 서병수 부산시장은 지난 2월 18일 영화제 자율성 보장 등을 위해 조직위원장을 민간에 이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부산시와 집행위원회, 영화계는 서 시장의 후임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왔다. 부산시는 최근까지 새 조직위원장으로 배우 안성기를 추천했고, 김 명예집행위원장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의견을 내비쳤다.

부산시가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은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아서 부담을 느낀 데다가, 올해 영화제가 열리지 못할 경우 부산시가 책임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칸 국제영화제 개막(11일)이 얼마 남지 않은 것도 고려 대상이었다. 부산영화제를 준비하기 위해서 집행위원회와 사무국의 실무자들이 칸영화제에서 관련 업무를 해야 한다. 칸영화제가 열리기 전에 부산영화제가 정상화가 돼야 가능하다. 또 칸영화제에서 해외 영화인들이 부산영화제 집행위원회와 영화계를 지지하는 성명을 낼 경우 부산시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도 있다.

주요 9개 영화단체로 이뤄진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도 김 명예위원장의 조직위원장 선임을 찬성하는 분위기다. 비대위는 지난달 18일 부산영화제 참석을 전면 거부하기로 했다. 이춘연 비대위원장은 "영화제에 대해 잘 아는 김 명예위원장이 조직위원장을 맡는다면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부산시에서 영화제의 독립성,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