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정태수(93) 전 한보그룹 회장이 과거 교도소 생활을 함께했던 사람을 자신이 세운 대학 직원으로 채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뒤늦게 이 사실을 확인한 학교법인은 학교 정관을 무시한 채용이라며 퇴직 처리했지만, 법원은 "시간이 지나 임용 결격 사유가 없어졌다"며 퇴직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강릉영동대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정수학원은 1991년 12월 A씨를 일반직으로 채용했다. A씨는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으며, 1991년 11월 가석방됐다. 정수학회 정관은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집행이 끝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된 뒤 5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사무직원으로 임용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지만, A씨는 가석방으로 풀려난 지 12일 만에 임용됐다.

A씨가 취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재단을 만든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 있었다. 당시 정 전 회장은 수서지구 택지 특혜분양 사건으로 구속돼 있었는데, 이때 교도소에서 A씨를 만난 것이다. 정 전 회장은 아들인 정종근 전 재단 이사장에게 "A씨 수감 생활을 지켜보니 성품이 올바르고 성실하다"며 채용을 추천했고, 정 전 이사장은 면접을 거쳐 A씨를 채용했다.

정수학원은 2014년 7월 뒤늦게 A씨 채용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A씨를 퇴직 처리했다. 하지만 A씨는 부당노동행위라며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했고, 지방·중앙 노동위원회는 해고가 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정수학원은 작년에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정수학원 측은 "정 전 이사장이 정관에 어긋나는 줄 알면서도 A씨를 임용한 것은 배임 행위"라며 "A씨 임용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정수학원 측 주장대로 정 전 이사장의 행위가 배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도, "A씨가 임용된 지 5년이 지나 결격 사유가 사라졌다"며 A씨 손을 들어줬다.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윤성원)도 1심과 같이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정 전 이사장 후임인 동생 정보근 전 이사장은 A씨 결격 사유를 알고도 입사 후 성실하게 근무한 점을 참작해 문제 삼지 않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A씨 채용이 무효라는 것을 알고도 묵시적으로 추인한 것으로 새로운 법률 효력이 발생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편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으로 구속됐던 정 전 회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후 1997년 한보 특혜 대출 사건으로 구속 기소돼 징역 15년이 확정됐지만, 2002년 대장암 등 건강상의 이유로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풀려났다. 정 전 회장은 2007년 강릉영동대 교비 횡령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 치료를 이유로 해외로 출국, 9년째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