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미에(三重)현 이가(伊賀)시의 모쿠모쿠 농장은 일본 6차 산업의 최전선(最前線)이다. 6차 산업은 1차 산업인 농·축·수산업과 2차 산업인 제조·가공업, 3차 산업인 판매·서비스업을 융합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한다는 개념으로, 소득 정체와 성장 한계에 직면한 지방 전통 산업이 나가야 할 신(新)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고모리 가쓰히데(小森一秀·48) 농장 관리책임자는 "체험 프로그램이 80여개이며, 평일에는 1000여명, 주말에는 2000여명이 '먹거리 교육'(食育)을 체험한다"고 말했다.

연 매출 580억원, 日 6차산업의 최전선

모쿠모쿠 농장은 1987년 기무라 오사무(木村修·65) 명예회장이 축산 농가 10여곳과 함께 만들었다. 20여년간 육가공 제품 생산에서 체험 프로그램과 식당·온천탕 등 휴양 시설 운영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지난해 모쿠모쿠 농장을 찾은 방문객은 50여만명. 연간 20만엔(약 215만원) 이상을 이곳에서 소비하는 고객이 5만명이다. 매출은 54억엔(약 580억원)을 기록했다. 마쓰오 나오유키(松尾尙之·58) 사장은 "현재 12㏊인 농장을 두 배 정도로 키우고, 도시 소비자를 겨냥해 유기농 쌀과 5~6가지 채소류, 된장 등 한 가족의 1주일치 식재료를 정기적으로 배달하는 서비스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모쿠모쿠 농장에선 정직원 150명을 포함해 1000여명이 근무한다. 지난달 8명을 선발한 신입사원 모집에 300여명이 지원했다.

일본 규슈 북부 후쿠오카(福岡)현 도카(遠賀)군의 부도노키 농장은 포도밭을 포도 넝쿨 우거진 예식장과 연회장으로 탈바꿈시킨 관광 명소다. 1984년 개장했다. 지난달 22일에도 하객 100여명이 참석한 작은 결혼식이 진행됐다. 비용이 일반 예식장의 70%이며,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지금까지 5000여쌍이 이곳에서 결혼했다.

'한국판 모쿠모쿠' 지향하는 고창 상하농원

국내에서도 6차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정식 개장한 매일유업의 상하농원은 '한국판 모쿠모쿠'를 지향하는 체험형 테마파크다. 매일유업과 고창군이 9만9000㎡(약 3만평) 부지에 370억원을 투입했다. 고창 지역 식재료로 햄과 빵을 만들어 판매하고, 소시지와 치즈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공방도 있다. 내년에는 객실 30여개를 갖춘 숙박 시설이 들어선다. 박재범 상하농원 대표는 "올해는 7만명, 2020년에는 30만명을 유치해 300억원 매출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기사 더보기

수확부터 캠핑까지 즐기는 '낭만 농장'

농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교통뿐 아니라, 농촌에 대한 인식 역시 도심과 매우 근접해진 것이다. 농촌의 변화를 앞장서 이끄는 개척자들이 있다. 귀농이 아닌 창농(創農) 개념으로 농촌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젊은 농부들이 있다. 2010년, 취업 준비를 접고 후배 두 명과 함께 충북 음성으로 내려와 터전을 마련하고 '보라농원'을 만들어 블루베리 재배를 시작했다. 마켓과 농원 운영을 위해 농업 회사 법인 '젊은농부들'을 설립한 이석무 대표다.

보라숲 텃밭

전국적으로 캠핑 붐이 불어닥치자 자연에서 캠핑을 즐기면서 농장에서 농촌 체험도 할 수 있는 새로운 캠핑 방식, 팜핑(Farm+Camping)을 시도했다. 단순히 블루베리를 생산하는 1차산업에 그치지 않고 이를 가공하여 잼, 발효 원액, 비누, 디저트, 음료 등을 만드는 2차산업, 그리고 3차산업으로 캠핑까지 아우르는 6차산업에 도전한 것. 1차×2차×3차산업으로 이뤄진 6차산업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이다.

보라숲 팜핑장을 방문해 블루베리 수확 체험부터 블루베리 잼 만들기, 블루베리 수제비 만들기, 블루베리 초콜릿 만들기까지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저녁이 되면 야외에서 바비큐 파티와 캠프파이어 등 캠핑의 낭만을 마음껏 즐길 수도 있다. 단 팜핑장 운영은 봄부터이고 블루베리 수확 체험은 수확 철에만 가능하다.

창농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젊은농부들'이 6차산업의 모범 사례로 손꼽힐 수 있었던 건 젊은 직원들의 열정과 신선한 아이디어, 그리고 도전 정신 덕분. 이 대표는 "20·30대 청년들의 성공적 6차산업 창농 소식이 속속 들려오고 있다"며 "앞으로 농촌과 도시 소비자들이 서로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연결 고리가 돼 농촌의 문화나 상품이 고루 전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더 많은 정보는 농식품부와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이 제공하는 '6차산업.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쿨 애그' 시대… 농업에서 미래를 본다

뉴질랜드 최대 도시 오클랜드에서 남쪽으로 100㎞ 떨어진 해밀턴시(市) 교외. 뉴질랜드 최대의 블루베리 농장인 BBC(BlueBerry Country)가 너른 평야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재배면적만 여의도 넓이 3분의1(2.8㎢)에 달한다.

농장 건물 안에 흥겨운 록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농장주 그렉 퍼니스(64)씨가 자신이 개발한 선과(選果) 기계(좋은 블루베리만 골라내는 장치)의 처리 속도를 나타내는 모니터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퍼니스씨는 단순한 블루베리 농사꾼이 아니다. 선과기계를 제작해 수출하는 기술 영농으로 성공한 기업가다.

1977년 블루베리 농사를 시작한 퍼니스씨는 1999년 선과기계를 손수 개발했다. 재배 면적이 늘면서 블루베리를 고르는 데 많은 인력이 필요하게 되자 기계를 개발한 것이다. 퍼니스씨의 선과기계는 색깔과 크기로 두 단계에 걸쳐 불량 블루베리를 걸러낸 뒤, 마지막으로 경도(단단한 정도)를 측정해 겉은 멀쩡하지만 속이 무른 블루베리까지 걸러내는 기능을 갖고 있다.

선과기계가 미국, 남미에서 인기를 끌며 수출이 늘게 되자 퍼니스씨는 2001년 농장을 분리해 2개의 회사를 설립했다. 블루베리를 생산하는 BBC 생산법인과 선과기계를 제작·판매하는 BBC테크로 분리한 것이다. 농사의 근간을 유지하면서도 선과기계 개발에 역량을 쏟아부어 수익을 극대화하자는 전략이었다.

그 결과 BBC 생산법인은 연간 200t의 블루베리를 생산해 6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BBC테크는 연간 15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성장했다. 두 회사를 합쳐 정규직만 130명이 근무하고 수확기에는 최대 300명을 고용한다.

퍼니스씨는 "나는 농부가 아니라 비즈니스맨"이라며 "대기업이 하기에는 규모가 작은 선과기계 시장을 뚫은 뒤 꾸준히 기술을 개발해 시장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BBC테크는 연간 9억원의 R&D(연구개발) 비용을 투입하고 있고, R&D 전담 직원만 1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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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호박미인+체험관광 결합… 매출 10배 뛰어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참샘골 호박 농원의 호박 창고에는 넓적한 맷돌 호박이 1만5000개 정도 가지런히 정돈돼서 쌓여 있었다. 호박은 가을에 수확하는데, 보통 3개월 정도만 지나면 썩어 버린다. 하지만 이 호박의 주인인 최근명(60)씨는 걱정이 없다. 호박을 상온에서 장기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을 2000년 개발했기 때문이다.

최씨는 "한번 자리 잡은 호박은 절대로 옮기지 않고 창고 온도는 12~14도, 습도는 60~65%로 유지하는 게 비결"이라며 "호박 가격이 가을엔 ㎏당 1000~2000원이지만, 봄이 되면 ㎏당 8000~1만원으로 오르고 여름이 되면 2만원을 넘어선다"고 말했다.그렇지만 최씨는 호박 장기 저장 비법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만나는 사람마다 알려준다.

인터넷으로 호박 팔다 호박즙·호박죽으로 '대박'

2000년대 초반 호박 장기 저장법을 개발한 최씨는 처음엔 다른 농부들처럼 호박을 도매 시장에 내다 팔려고 했다. 하지만 상인들의 텃세가 심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호박을 팔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고객이 "호박만 팔지 말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호박즙도 파세요. 호박이 피부 미용에 좋다는데 호박즙 먹고 미인이 되고 싶어요"란 글을 최씨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최씨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2003년 '호박미인'이란 브랜드를 특허청에 상표 등록하고 호박즙과 호박죽을 만들어 인터넷으로 팔기 시작했다. 1년 내내 원료 공급이 가능한 이점이 있었다. 최씨는 하루에 8000~1만개의 가공품을 포장해 판매하고 있다. 호박 가공품 대 호박의 매출은 95대5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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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엔 체험 관광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인터넷에 "주말에 애들 데리고 농장에 가서 체험하고 싶다"는 글이 올라온 것을 보고 착안한 것이다. 최씨는 "당시만 해도 그 글을 보고 '지저분한 농촌을 왜 보고 간다고 하지'란 의문이 들었다"며 "하지만 초청해 보니 농장을 직접 보면 소비자들이 신뢰하고 믿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덤으로 체험만 하고 가는 게 아니라 제품을 한 보따리 사간다는 것이다. 최씨는 체험 관광은 혼자 하기 버거워 마을 주민들과 같이 하고 있다. 호박 피자 만들기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2010년엔 서울의 중소 유통업체에서 일하던 아들 최정환(30)씨가 아버지 일을 돕겠다면서 귀농을 했다. 최씨는 "아들이 내려와서 마케팅에 신경을 덜 쓰고 가공에 전념할 수 있게 돼 매출이 10% 늘었다"고 말했다.

◇ "생산+가공·유통+관광 융합"이 대세

최씨처럼 개인이 아니라 마을이 뭉쳐서 재배, 가공, 관광을 융합하는 경우도 있다. 강원도 횡성의 금나루무지개마을은 7개 이(里)가 모여 친환경 쌀 재배를 하고 누룽지를 만드는 공동 사업을 펼친다. 쌀 20㎏은 6만원 정도 받는데, 이를 누룽지 20㎏으로 가공하면 21만6000원을 받는다. 2012년에 누룽지 가공으로 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친환경 농촌 체험을 위한 방문객도 한 해 1만7000명에 달한다. 체험 관광센터인 금계문화교류센터에서 1억4000만원 매출이 나왔다.

임실 치즈마을에서 도시민 가족들이 치즈 만들기 체험을 즐기고 있다.

대표적인 농촌 체험 마을인 전라북도 임실 치즈마을도 성공 사례다.임실 치즈마을은 국내 최초로 지정환 신부가 가난한 농민들을 돕기 위해 산양 두 마리를 밑천 삼아 치즈 가공을 시작한 지역이다. 69가구가 사는 마을에서 체험 관광 매출이 12억원으로 판매 매출 5억원을 훨씬 웃돈다. 체험객만 연 7만명이 넘는다. 치즈마을에는 치즈 체험장, 농특산물 판매장, 숙박, 식당을 마을 공동으로 운영한다. ▷기사 더보기

"람보르기니(伊 최고급 스포츠카) 몰고싶다면 農夫가 돼라"

부자가 되고 싶은 젊은이라면 MBA(경영학 석사)가 아니라 농업 학위를 따라."

세계적 투자가 짐 로저스의 말이다. 우리는 농민이라고 하면 밀짚모자를 쓰고 경운기를 모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짐 로저스는 미래의 농민은 람보르기니(최고급 스포츠카)를 몰 것이라고 예고한다.

그간 한국 농업은 우루과이라운드, FTA(자유무역협정) 등 대외 개방의 파도에 대응한 '수비'에 치중했지만, 언제까지나 수비만 할 수는 없다. 미래 세대가 농업을 '쿨(cool·매력적)'하게 보고 신(新)성장 동력을 찾게 해야 한다. 우리 농업의 미래는 다른 산업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융합하는 '쿨 애그(cool Agriculture)'에 있다.

이미 발 빠른 농민은 움직이고 있다. 안전한 고급 농산품을 찾는 소비자를 겨냥해 '로컬 푸드'를 길러내고, 이를 다시 소비자 눈높이에 맞춰 가공 포장해 인터넷으로 판매하고 있다. 농산물을 테마로 체험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어 도시인들을 농촌으로 불러 모으는 농민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쿨 애그의 전사들은 1차(농업)·2차(가공)·3차(관광·유통)산업을 섞어서 농업을 '6차산업'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