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키워드 정보]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

총선 결과에 대해서 '황금분할'이니 합의에 의한 '협치(協治)'의 시대니 하는 공허한 수사(修辭)가 난무하고 있다. 듣기는 좋지만 현실은 오히려 되는 일은 없고 대중영합주의적 정책만 합의되고 난무하는 절망적 상황이 전개될 개연성이 크다. 현실인식이나 세계관에 대한 최소한의 공통분모가 있어야 어느 정도의 협치가 가능하겠지만, 한국의 정치 지형은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 북한인권법의 예를 보자. 너무나 당연한 이 법은 2005년 김문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후 무려 11년간 표류하다가 올해 3월에야 겨우 국회를 통과했다. 또한 집권당이 과반을 장악했을 때도 국회선진화법이란 악법 등으로 여러 개혁안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했는데, 지금처럼 누구도 주도권을 쥐기 힘든 상황에서 과감한 개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한국은 국내외적으로 점점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 침체 속에서도 그동안 비교적 선방해 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산업계 전반의 구조조정과 노동 개혁 등을 해야 하고 북핵 위기 등의 안보 문제에도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냉정히 얘기하면 한국은 이러한 국내외의 도전에 유연하게 대응할 기민성을 거의 상실한 상태이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사회보장제도의 합리화라는 과제를 살펴보자. 울산에서 부분적인 '야권연대'를 통해 통합진보당 세력이 국회에 재진입한 것은 분명히 노동시장의 유연화와는 정반대 방향의 현상이다. 한진중공업 사태 당시 '희망버스'라는 오도된 이름의 정치 투쟁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동조했던 정치인 상당수가 이번에도 국회에 입성했다. 반면에 한국의 조선업은 이제 국제적 경쟁력을 상실해 가고 있으며 오히려 '절망적' 국면에 다다랐다.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한국의 정치·사회 환경에서 독일의 하르츠(Hartz) 개혁 같은 정책이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르츠 개혁은 무엇인가. 독일도 대중영합적인 반(反)시장 경제정책으로 인해 경제 침체와 높은 실업률 그리고 극심한 재정 적자에 허덕이는 소위 '독일병'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슈뢰더의 사회민주당 정권은 '노동시장 근대화에 관한 위원회(하르츠위원회)'를 만들어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한 개혁과 사회복지 정책의 합리화를 추진했다. 이 정책은 메르켈의 우파 정권에도 그대로 계승됐고 그 결과 독일은 만성적 독일병에서 탈피해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경제 대국으로 다시 일어섰다. 좌파와 우파 정권이 독일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야말로 협치를 통해 이뤄낸 쾌거였다. 불행히도 사분오열된 한국의 국회에서, 합리적 대화와 합의가 불가능한 한국의 정치문화에서, 사회적 공통 가치를 상실한 한국의 사회 풍토에서 협치를 통한 의미 있는 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필자는 예전에 '그리스행 특급 탄 대한민국?'이란 글을 통해 한국의 그리스화를 경고한 적 있다. 작년에 방문한 그리스는 찬란한 문화유산과 멋진 자연환경을 빼곤 모든 게 엉망이었다. 내 생전에 비조직적이고 비능률적인 것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인과 이탈리아 사회조차 근면해 보이고 질서가 잡힌 것으로 보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대중영합주의적이고 무기력한 사회인 그리스를 보고 나서 이탈리아에 갔을 때 받은 느낌이었다. 필자가 그 글을 썼던 2012년과 비교할 때, 한국의 무책임과 무질서는 그리스와 점점 더 닮아가고 있다.

제1당이 된 더민주당은 기본적으로 운동권 마인드의 구성원이 절대다수이다. 그런 정당에게서 개혁적 리더십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인기영합적인 푸닥거리에 익숙한 정당 체질로부터의 탈피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 추진했던 제주 해군기지와 한·미 FTA를 야당이 되더니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정치집단과 무슨 합리적인 협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집권 새누리당은 오만으로 인해 자멸로 향하며 한국사회의 위기를 자초했고 정국의 주도권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캐스팅보트를 쥘 국민의당에서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인기영합적 경향이 강한 안철수 의원과 '원조 친노'인 천정배 의원이 공동대표인 국민의당은 원래 더민주당과의 친화성이 더 높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양적 완화가 뭔지 모를 것 같은데요? 하하, 아유 참"이라며 오만을 뿜어내는 자세로는 한국의 위기를 극복할 지도력을 얻기 힘들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호는 시계(視界) 제로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정치권이 우리 앞의 난제를 헤쳐나가길 바랄 뿐이다. 거의 불가능한 기대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