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회장의 '집사 변호사'는 회장 앞에서 늘 공손하게 양손을 모았고 시선도 아래로 깔았다. 그래도 회장의 화풀이 상대가 돼 얻어맞곤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재벌 회장의 불법 상속과 탈세를 덮으려고 온갖 탈법을 저질렀다. 해결사로 깡패를 동원하기도 했다. TV 드라마에 비친 재벌과 변호사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대개는 막장 드라마다.

▶가끔은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막장일 때가 있다. 해외 원정 도박 혐의로 징역형이 선고된 화장품 회사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정운호씨 사건이 그렇다. 보석(保釋)과 집행유예를 조건으로 한 변호사와의 50억원 거래, 전관(前官) 변호사들의 로비 의혹, 법조 브로커와 판사의 부적절한 만남…. 주인공과 줄거리까지 흥미진진한 법조 비리 막장 드라마의 완결편을 보는 듯하다. 사건이 불거진 계기 역시 '돈'이었다.

[[키워드 정보] 현실에도 불어오는 막장드라마 열풍]

▶정씨는 작년 말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새 변호사를 선임했다. 부장판사 출신 여성 변호사였다. 보석과 집행유예를 조건으로 50억원 약속이 오갔다. 판사의 재량권이 많은 보석은 변호사들에겐 '황금어장'으로 통한다. 특히 전관 변호사들은 두둑한 돈을 챙길 기회다. 변호사는 집사 변호사처럼 움직였다. 수임 후 석 달 동안 구치소로 60차례 넘게 접견을 갔다.

▶보석 신청이 기각되면서 진흙탕 싸움이 시작됐다. 정씨는 선불로 준 20억원을 돌려달라고 했다. 변호사는 변호인단 20여명 꾸리고 정씨의 성추행·폭행 사건까지 뒤처리하느라 돈을 다 썼다고 맞섰다. "나는 정씨의 '금전 출납부'에 불과했다"고 했다. 급기야 구치소 접견실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변호사는 정씨를 폭행 혐의로 고소했고 정씨는 변호사협회에 과다 수임료 문제를 제기했다. 서로를 비난하면서 사건은 법조 비리 의혹으로 옮겨붙었다. 정씨 측 브로커가 정씨의 항소심 재판장과 일식집에서 저녁을 함께했고 검찰도 항소심 구형량을 1심보다 6개월 깎아준 사실이 알려졌다.

▶아직 로비가 통했다는 증거는 없다. 문제의 부장판사는 뒤늦게 정씨 사건이 자신에게 배당된 걸 알고 식사한 바로 다음 날 다른 재판부로 사건 재배당을 요청했다. 재판부가 바뀌었고 정씨는 2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보석도 기각됐다. 검찰도 구형량을 줄여주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법원·검찰은 법조 비리가 터질 때마다 수없이 근절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부장판사가 브로커와 어울리고, 보석을 놓고 거액이 거래되는 음습한 현실에 비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소시민들 눈엔 참 요지경 같은 법조계 뒷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