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 과학전문기자

[[키워드 정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란?]

지난 21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열린 제49회 '과학의 날' 기념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주재하는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신설해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R&D) 투자를 이끌겠다고 밝혔다. 생일을 맞은 과학계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과학 정책 옥상옥이 생겼다" "공무원들의 목소리만 더 커지게 됐다" "대통령과 과학계 사이의 거리가 더 멀어졌다"는 비판 일색이었다.

정부는 과학기술전략회의가 R&D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기존의 컨트롤타워들은 무엇일까.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과학기술과 정보방송통신 정책을 아우르는 R&D 총괄 부처로 미래창조과학부가 탄생했다. 이번 정부의 핵심 정책인 창조경제를 총괄하는 것도 미래부다. 작년에는 R&D의 비효율을 혁신하고 컨트롤타워의 기능을 강화한다며 미래부에 '과학기술전략본부'도 만들었다. 그뿐이 아니다. 대통령이 의장으로 직접 회의를 주재하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있다. 또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가과학기술심의회도 과학기술 정책을 조정하며 예산을 배분하는 역할도 한다.

과학 선진국이라는 미국에는 과학 정책 전담 부처가 없다. 에너지부나 국방부가 따로 R&D 정책을 세우고 예산을 집행한다. 컨트롤타워라면 백악관의 과학기술정책실 정도로 볼 수 있지만, 미래부에 비교하면 규모가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강력한 과학기술 정책이 집행되는 것은 대통령과 과학계의 '스킨십' 덕분이다.

과학자 출신의 현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은 2009년부터 지금까지 오바마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면서 과학계의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가 5명이나 고위직에 오를 정도로 과학계 출신 장관들도 많다. 이들이 많게는 일주일에 다섯 번씩 대통령과 머리를 맞대고 토론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다. 청와대에 다녀온 과학계 인사들은 회의에서 장관들이 대통령에게 터놓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내각책임제를 하는 영연방 국가에서는 부처마다 최고 과학자들을 과학자문으로 두고 있다. 이들이 장관에게 직접 부처와 관련된 과학 현안을 보고한다. 우리나라 기획재정부나 국방부 장관이 과학자를 만나 과학 현안을 듣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사실 대통령도 답답할 것이다. KIST를 다녀온 날 오후, 대통령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바이오산업의 규제 개선안을 논의했다. 대통령은 불가 항목만 명시하고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 개선을 누누이 강조했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법안 개정이 필요하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공무원들이 짠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면 누구라도 힘을 쓸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새로운 컨트롤타워를 기획했는지 모르지만, 이는 원인 치료보다는 드러난 증상만 다스리겠다고 약을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과학자들은 더디더라도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현 KIST) 설립 후 3년여 동안 한 달에 한두 번꼴로 들러 박사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애로사항을 듣고 해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KIST를 찾은 것은 지난 21일까지 두 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