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25일(현지 시각) '탈(脫)석유 경제'로 전환하는 대대적인 경제 개혁 정책을 발표했다. 사우디는 정부 수입의 75%, GDP의 45%를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 이 구조를 뜯어고쳐 석유 없이도 지속되는 경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석유 회사인 사우디 국영 아람코의 회장이자 경제 개혁을 총괄하는 무함마드 부(副)왕세자는 향후 15년간의 경제 계획을 담은 '비전 2030'에서 우선 아람코의 주식 5%를 매각하는 기업 공개(IPO)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상장 후 시가총액은 2조5000억달러(약 2900조원)로 추정된다. 현재 시총 세계 1위인 애플(약 690조원)의 4배다. 사우디는 기업 공개 등으로 2조달러 국부 펀드를 조성한 뒤 이를 통해 광공업·관광·금융·물류 등 민간 산업을 육성하고 도시·인프라를 개발할 계획이다. 무함마드 부왕세자는 25일 국영방송 인터뷰에서 "석유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

[[키워드 정보] 국부펀드란?]

아람코는 2015년 해외에 개방된 사우디 증권거래소에 상장되기 때문에 이번 상장이 해외 투자가들을 사우디로 끌어들이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 지분 매각으로 얻은 수입에 국유지와 공단을 팔아 모은 수입 등을 합쳐 세계 최대 규모인 2조달러(약 2300조원) 상당의 국부 펀드를 만들 계획이다. 펀드는 아람코가 아닌 외부 전문가들이 운용하게 되며, 사우디 내 인프라 개발과 국내외 성장 산업 분야에 투자될 예정이다. 특히 사우디 내 도시 개발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돼 제2의 '건설 붐'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비전 2030'에는 민영화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청사진이 담겼다. 우선 2020년까지 광공업 등에서 9만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계획이다. 석유 의존도를 줄이려면 민간의 비석유 부문이 커져야 한다. 2030년까지 GDP에서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의 40%에서 65%까지 높이기로 했다. 또 자국 군수 산업을 키워 2030년까지 사우디 국방비의 50%가 국내에서 사용되도록 할 계획이다. 무함마드 부왕세자는 "기름이 사라져도 살아남을 경제 기반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또 아람코를 시작으로 국영기업 일부를 민영화해 비(非)석유 부문에서 얻는 정부 수입을 현행 1630억리얄(약 50조원)에서 2030년까지 1조리얄(약 300조원)로 6배 확충할 방침이다. 실업률을 현행 11.6%에서 2030년까지 7%로 줄이고, 노동 인구 내 여성 비율을 22%에서 30%, GDP 대비 중소기업 비율을 20%에서 35%로 높일 계획이다.

외국인에게 폐쇄적이었던 제도도 대폭 정비한다. 사우디 장기 체류 외국인 근로자에게 5년 내에 그린카드(Green card·외국인 영구 거류증)를 발급해주기로 했다. 그동안 이슬람 질서 보존을 내세워 외국인 입·출국과 거주를 엄격히 통제해 왔던 것에 비해 파격적인 조치다.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은 사우디 정부의 오랜 과제였다. 최근 저유가로 재정이 악화되면서 석유 없이 지속 가능한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더 심해졌다. 2016년 사우디 정부 예산은 3262억리얄(약 100조원) 적자가 예상된다. 지난 2월 외환보유액은 2조2224억리얄(약 680조원)로 전년 2월보다 17% 줄었다. 한편 '비전 2030'에는 보조금 삭감이나 추가 과세 등 국민의 고통을 수반하는 개혁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사우디 정부는 작년 12월 수도·전기요금을 올렸다가 불만이 커지자 지난 23일 수도·전력장관을 경질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5일 사우디를 포함한 아라비아반도 산유국에 대해 "야심적인 재정 재건 노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저유가가 지속되면 재정수지가 계속 악화할 수밖에 없다"면서 "더 실질적인 적자 절감 노력이 요구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