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늘 관계 부처 회의를 열어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기로 했다. 미루고 미루었던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뒤늦게 급물살을 타고 있으나 문제는 부실 쓰레기를 청소할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이다.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글로벌 위기를 거치며 정부가 쏟아부은 공적 자금은 170조원이 넘는다. 구조조정 때마다 사실상 온 국민에게 그 비용이 전가(轉嫁)된 것이다. 이번에도 최소 수십조원대 비용이 소요될 전망이다. 부실을 도려내려면 기업 자본금을 늘려주거나 은행 빚을 탕감해줘야 하고 실업자를 지원하는 데도 막대한 돈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제껏 자금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할지 방안조차 내놓지 않고 있어 답답하다.

부실기업 정리를 책임져야 할 국책은행들 가계부엔 이미 적신호가 요란하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국내 부실기업들의 12%를 떠안은 데다 대우조선해양 부실을 메우느라 작년에만 5조원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이 바람에 수출입은행의 자기자본 비율은 적정치 10%보다 낮은 9%대이고,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도 이대로 가면 은행 자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

이제 급한 건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구조조정 재원을 확보하는 일이다. 총선 과정에서 화제가 됐던 '한국판 양적 완화'는 여전히 검토할 만한 대안이다. 한국은행이 국책은행에 직접 돈을 지원하고 채권을 매수해주면 국민의 직접 부담이 생기지 않는다. 글로벌 위기 때 만든 금융안정기금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이 기금은 2009년 설치된 후 자금 출연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한은이나 정부, 시중은행 자금까지 모두 받아 쓸 수 있다. 실업자 지원을 위해선 근로자와 고용주가 내는 고용보험기금을 한시적으로 더 걷어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1000만 근로자와 해당 고용주들이 매달 1만원씩 더 부담하면 한 달 1000억, 1년 1조2000억원이 넘는 재원을 만들 수 있다.

세금을 쓰든, 한국은행 발권력을 이용하든, 다른 기금을 쓰든 결국 부담은 최종적으로 국민에게 나눠진다. 이 때문에 구조조정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제시하고 국민적 합의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절차를 생략하면 "왜 내 돈을 경영에 실패한 대기업을 위해 쓰느냐"는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천문학적 자금 지원이 부도덕한 재벌 오너나 귀족 노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불가피한 투자라는 사실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부실기업 오너 대주주들이 경영 정상화를 위해 사재(私財)를 털어 넣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대주주가 회사 돈을 몰래 빼냈거나 알짜 계열사를 따로 빼돌렸다면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어느 국민이 부실 처리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동의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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