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다음 달 일본 히로시마(廣島) 방문 가능성과 관련, 니어(NEAR)재단(이사장 정덕구) 초청으로 22일 서울에서 만난 한·중·일의 대표적 석학들이 우려를 나타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비핵·평화'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피폭지인 히로시마 방문을 고려 중이지만, 이에 대해 "전범 국가인 일본을 피해자로 둔갑시켜 일본의 과거 침략사에 면죄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중·일 전문가들이 22일 서울 광진구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동북아 역사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스인훙 중국 런민대 교수,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일본 아사히신문 주필, 정덕구 니어(NEAR) 재단 이사장,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동북아 (역사) 문제가 지금도 상당히 복잡하고 해결 전망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면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며 "역사 문제가 해결돼 동북아 평화공존 체제가 확립된 뒤에 미국 대통령뿐 아니라 각국 원수들이 함께 방문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스인훙(時殷弘) 중국 런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도 "미국 대통령의 원폭 도시(히로시마) 방문은 중국을 자극하는 행위"라며 "(미·일이) 안보 경쟁을 유도하고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당사국인 일본의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전 아사히신문 주필은 "'히로시마는 일본의 피해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비극을 상징하는 장소로, 미국 대통령이 방문하는 것은 '핵폐기'의 메시지를 발신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바람직하다. 히로시마에서는 한국인 피폭자도 많았다"고 말했다.  다만 "우파 총리가 집권하고 있고, 미국과의 방위협력도 증강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특히 중국과 한국 등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하고, "그런 의미에서 일본 총리가 중국 난징을 방문하고,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 된다면 보다 바람직할 것"이라고 했다. 난징은 1937년 중일전쟁때 일본군이 대규호 학살을 저지른 곳이다.

동북아의 과거사 해법과 관련, 이 명예교수는 "3국 청소년들이 과거 역사를 공부하며 평화 공존을 모색하는 길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했고, 와카미야 전 주필은 "한국이 (6·25 전쟁 때 북한 편을 든) 중국에 대해 매우 관대한 것처럼 일본에 대해서도 관용을 베풀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스인훙 교수는 "일본 정부가 역사 화해를 위해 노력해야만 중국 인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