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한 전 국회의장 등 새누리당 원로들이 그제 원유철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친박(親朴)계 해체를 선언할 것을 주문했다. 당 재건은 계파 갈등을 없애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부터 먼저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계파 정치를 없애겠다고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목불인견(目不忍見), 막장 공천 같은 원색적인 말까지 써가며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질타했다. "새누리당의 가장 큰 문제는 자생력이 없다는 것" 같은 뼈 아픈 얘기도 나왔다. 진박(眞朴) 논란을 일으킨 사람들은 당분간 2선으로 물러나 있으라는 주문도 했다.

이들이 말한 내용은 새삼스러운 것들이 아니다. 웬만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이번 총선 결과가 여권 전체의 오만과 진박들이 밀어붙인 계파 공천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정작 새누리당은 총선이 끝난 지 열흘이 지나도록 수습의 실마리를 마련하기는커녕 무기력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심지어 다음 달 3일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벌써 친박이니 비박(非朴)이니 하며 계파별로 뭉치려는 모습이 재연되는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22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 지지율과 새누리당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 지지율이 2당이나 3당으로 밀리고 있다는 다른 조사 결과마저 나오고 있다. 일시적 현상일 수는 있으나 총선 후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모습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이 더 깊어지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박 대통령은 선거 닷새 후인 지난 18일 "민의(民意)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는 어중간한 말 한마디를 한 뒤 어떤 수습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신(新) 3당 체제로 재편된 국회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생각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이렇게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생각이라면 그것은 지나치게 안이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가는 점점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어 갈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은 원로들의 주문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당·청 관계를 계파를 허무는 데서부터 완전히 새롭게 설계하고 그동안 소원(疎遠)했던 인사들에게 손을 내밀며 당내 화합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야당 대표들과도 가급적 이른 시일 내 만나 협조를 당부해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계파 정치의 폐해를 지적하고 앞으로 진박이니 친박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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