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엘윈 브룩스 화이트가 1952년 쓴 동화 '샬롯의 거미줄'(사진·시공주니어)이 최근 국내에서 100쇄를 돌파했다. 1996년 출간 이래 판매 부수는 약 45만부. 이 책은 1985년 창비에서 '우정의 거미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돼 국내에 소개되며 3만부 넘게 팔리기도 했다.

출판계 불황에도 불구하고 100쇄를 넘기는 어린이 책이 있다. 아동문학가 권정생의 '몽실언니'(창비)는 2012년 100쇄를 넘겼다. 1984년 초판 출간 이래 100만부 넘게 팔렸다.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사계절)은 2011년 국내 아동 서적 분야에서 처음으로 100만부 넘게 판매돼 밀리언셀러가 됐다. 2000년 처음 출간돼 양장·애니북 합쳐 100쇄를 넘었고 지금까지 165만부가량 팔렸다. 이 밖에 권정생의 '강아지똥',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원유순의 '까막눈 삼디기', 황선미의 '나쁜어린이표',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책 먹는 여우' 등이 100쇄를 넘긴 대표적인 어린이 책으로 꼽힌다.

스테디셀러가 되는 어린이 책의 요건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부모가 아이에게 사 주는 책'이라는 어린이 책의 특성상 부모와 아이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어린이 책이 오랫동안 읽히려면 부모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시에 아이가 '아, 이거 내 얘기야' 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세대와 시공을 아우르는 이야기의 보편성이다. 돼지와 거미의 우정을 그린 '샬롯의 거미줄'이 대표적인 예. 이 책은 도축장에 끌려갈 뻔한 돼지 윌버를 거미 샬롯이 구해주고, 윌버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샬롯이 세상을 떠난 후 그 새끼들을 책임진다는 내용이다. 아동문학평론가 조월례씨는 "'샬롯의 거미줄'을 관통하는 정신은 다른 친구를 향한 진심 어린 사랑이다. 그런 친구를 갖고 싶다는 보편적 욕망에 대리만족을 안겨줄 수 있는 이야기라 연령과 국적을 불문하고 널리 읽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들이 우울한 이야기보다는 밝고 즐거운 이야기를 좋아할 거라는 선입견도 어린이 책 스테디셀러의 법칙에서 어긋난다. '몽실언니'는 전쟁통에 부모를 잃은 소녀 몽실이가 가난의 참혹함을 견뎌내며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인 암탉 잎싹은 갖은 고난을 겪다가 결국 족제비에게 잡아먹힌다. 김태희 사계절 아동청소년문학팀장은 "지금 어린이 책 시장의 성장을 일궈낸 386세대 부모들은 다양한 주제의 어린이 책을 자녀들에게 읽히고 싶어했고 윗세대와는 달리 어린이 책이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밝고 아름답고 선한 것만 보여주어야 한다는 '동심 천사주의'적 강박이 아동문학계에 팽배한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어린이에게 현실을 보여줘야 한다는 신념을 담은 이야기가 아동 문학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번 스테디셀러가 된 어린이 책은 좀처럼 신간에 자리를 내 주지 않는다. 어린이 책은 '내 아이에겐 검증된 책만을 읽히고 싶다'는 부모의 마음을 반영하는 보수적인 시장이기 때문이다. 김형보 어크로스 출판사 대표는 "어린이도서연구회 등 독서운동 단체에서 지정한 초등학생 권장도서, 교과서에 실린 책들이 오랜 기간 스테디셀러가 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