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엘리트층이 흔들리고 있다. 2013년 말 장성택 처형을 시작으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공포정치'가 본격화하면서 당·정·군의 핵심 계층이 줄줄이 탈북하는 양상이다. 최근 2년간 국내에 들어온 당·정·군 간부급만 20여명인 것으로 집계된다.

김정일 시대는 일반 주민의 탈북이 많았다. 반면 엘리트층은 단결했다. 김정은 시대는 이와 반대다. 일반 주민의 탈북은 줄었지만 엘리트층이 북한 체제를 떠나는 것이다. 국책 연구소 관계자는 "과거 공산권 독재자들은 김정일처럼 핵심 계층을 끌어안고 끝까지 버텼다"며 "지금처럼 엘리트 계층이 동요한다면 김정은이 위기를 맞았을 때 내부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은 11일 브리핑에서 북한 정찰총국 소속 대좌의 한국 망명을 확인하며 "이런 부분들이 (북한) 권력층 이상 징후의 표본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찰총국은 2009년 김정일이 당·군에 흩어졌던 대남 공작 부서를 통폐합해 만든 조직으로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지난해 목함지뢰 도발 등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한 핵심 계층은 '칭병(稱病·병이 있다고 핑계)'과 '승진 거부', '해외 근무 선호'라는 세 가지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 김정은이 집권 5년 만에 측근 간부 130여명을 숙청한 이후 김정은의 칼바람을 일단 피하고 보려는 현상이다. 당·정·군의 원로 간부들은 '아프다'는 이유로 해외 치료나 병원 입원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군 실세라는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도 작년 이후 척추 치료 등을 이유로 해외로 나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은 "고위직일수록 언제 숙청될지 모른다는 스트레스가 심하기 때문에 실제 아픈 경우가 많다"며 "원로들은 이를 핑계로 김정은의 눈에서 멀어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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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종적을 감췄던 최룡해 노동당 비서는 김정은에 대한 불만을 잠깐 비쳤다가 부부가 함께 지방 농장으로 쫓겨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2인자로 불렸던 최룡해는 작년 10월 노동당 70주년 행사 때 야간 횃불 집회를 주관했다. 최룡해가 이끌던 청년동맹이 대규모로 동원돼 성공적으로 행사를 끝냈다고 한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에 대해 칭찬을 하지 않았다. 최룡해는 측근들에게 '알아주지 않는다'는 불만을 토로했고, 이 언급이 김정은에게 직보되면서 최룡해는 함경남도의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김씨 왕조의 공신(功臣)이라는 최룡해도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숙청 대상에 오르는 상황에서 누가 김정은 곁에 있으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김정일 시대만 해도 당·정·군 간부라면 승진해서 중앙당에 근무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다. 김정일은 일반 주민에게는 가혹했지만, 측근에게는 각종 선물과 특권을 안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 간부들은 출세하려다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앞선다고 한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최근 북한 장성들의 별은 애들 장난처럼 떨어졌다 붙기를 반복하고 있다"며 "승진해서 변덕스러운 김정은 앞에 서는 것이 무서울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해외 근무의 인기가 치솟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로 나가기 위해 뇌물과 배경을 총동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외 근무자도 노동당 70주년 행사(작년 10월)와 당 대회(오는 5월) 준비를 거치면서 심각한 '외화 상납금' 압박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 무역회사와 식당의 수입은 대북 제재로 종전의 절반으로 줄었는데, 상납금은 두 배로 늘었다"며 "상납금을 제때 마련하지 못하면 소환→숙청으로 이어지는 만큼 이를 피하기 위한 탈북자가 계속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