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이제 사람들은 책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역사를 배우고 이해한다. 그러다 보니 그리스 vs 페르시아 전쟁도 헤로도토스의 저서 ‘역사’로 설명하려면 답이 안 나온다. 그래서 해당 수업 시간의 텍스트는 책이 아니라 초콜릿 복근의 영화 ’300′이다. 문제는 이 ‘텍스트’가 잘못 쓰였거나 건너뛴 게 많다는 사실이다. 일단 스파르타라는 나라는 공식적으로 세상에 없다. 라케다이몬이 정식 국호이고 스파르타는 그 나라 왕비였던 스파르테에서 유래한 별칭일 뿐이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레오니다스라는 왕이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지만 스파르타에는 원래 왕이 둘이다. 하나는 어디서 뭐 하는지 영화에 안 나온다. 왕이 맨 앞에 나가 싸우는 건 맞다. 스파르타의 왕은 개전(開戰)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대신 조건이 있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무조건 맨 앞에 서야 한다. 반대로 후퇴할 때는 제일 마지막이다.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전쟁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구조다. 영화 속에서 스파르타의 정예부대 300명은 다 죽는다. 실제 기록에선 다 죽지는 않았다. 하나는 그날 몸이 안 좋아서 전투에 나가지 못했다. 하나는 전황을 알리려 스파르타로 뛰었기 때문에 살았다. 전시에 살아있는 게 치욕인 나라였다. 아들이 시체가 되어 방패에 실려 오는 것이 명예라고 생각하는 어머니들의 나라였다. 영화에 추가되었다면 좀 더 멋있을 뻔했던 내용도 있다. “스파르타인은 적이 몇 명이냐고 묻지 않는다. 적이 어디 있느냐고 물을 뿐이다.” 스파르타의 왕이었던 아기스 2세가 남긴 말인데 누락이 아쉽다. 영화 속 레오니다스왕은 항복을 권유하러 온 페르시아 사절들을 발로 차 무저갱에 처넣는다. 그 대목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대사가 있다. 스파르타인들은 협상이든 항복 권유든 메시지를 들고 온 사절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몰론 라베.” ‘와서 빼앗아 보라’는 뜻이다. 이렇게 틀린 것, 빠진 것 설명하다가 수업 시간의 절반이 간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놓치고 지나가는 것도 많다. 주인공이 막판에 신분을 밝히면서 “내 이름은 막시무스 어쩌고저쩌고” 떠드는 영화가 있다. 장군이었다가 노예 검투사로 전락한 남자의 이야기 ‘글래디에이터’다. 시합에 나가기 전 막시무스는 어깨에 새긴 글자 문신을 칼로 밀어버린다. 글자는 SPQR로 라틴어 ‘로마의 원로원과 시민들’을 뜻하고 스페쿠엘로 발음한다. 로마 시민권자임을 숨기거나 스스로 그 자격을 포기하는 장면인데 주인공을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눌 만큼 중요한 장면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그리스의 도시 국가 시대에서부터 로마까지 시민권은 대단히 중요한 권리였다. 소크라테스는 기꺼이 독배를 마셨지만 손자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 확정되자 냉큼 외국으로 달아났다. 철학자답게 멋진 도주의 변(辯)을 남겼는데 "아테네 사람들이 위대한 인물을 죽이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가 그 이유였다. 그런데 이건 약간만 진실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아테네는 어쨌거나 위대하고 거역할 수 없는 권위의 조국이었다. 그래서 전쟁에도 나갔고(사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리스 내전. 기록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전쟁도 아주 잘했다고 한다) 조국이 내린 사약도 받아 마신 것이다. 그런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 시민권자가 아니었다. '시민권자도 아닌데 내가 이걸 왜 마셔?' 했던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진짜 도주 사유였다. 그런데 같은 시민권이지만 아테네의 시민권과 로마의 시민권은 질이 다르다. 아테네의 시민권은 야박했다. 부모 둘이 다 아테네 시민이어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기득권이다. 반면 로마의 시민권은 취득권이다. 출신과 지역이 어떻든 의지와 성과만 있으면 받을 수 있었다. 로마 시민권은 모든 식민지인과 노예의 로망이었다. 흔한 말로 체격은 게르만족에게 밀리고 기술은 에트루리아인에게 떨어지고 경제력은 페니키아에 뒤처졌던 로마가 보편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시민권으로 상징되는 개방성이었다. 이 시민권은 요즘 말로 하면 계층 사다리다. 사다리 없는 곳에 불만은 쌓이고 사다리 위에 있는 자들에 대한 적개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서기 212년 카라칼라 황제는 이 시민권을 로마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대가 없이 나눠주었다. 결과는 별로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시민권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사회의 팽팽함이 사라졌고 기존의 시민권자들은 명예의 박탈로 더 이상 자부심을 가지고 로마 제국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았다. 열린사회는 무작정 평등한 사회가 아니다. 격차는 있지만 사다리가 존재하고 시기 대신 부러움과 경쟁이 작동하는 사회다. 미래를 알고 싶으면 고대를 연구하라는 경구는 이래서 유용하다.

※ 영화를 통해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는 ‘영화 & 역사’를 연재합니다. 집필은 남정욱 교수가 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