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정치부 차장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은 지금…]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은 친박(親朴)계가 했다. 특히 TK(대구·경북)에선 친박이 신인을 발굴해 지역까지 배정해 의원을 만들어줬다. "배지를 아예 가슴팍에 척 붙여준 것"이라고 공공연히 표현하는 이도 있었다. TK 초선 의원들은 임명되듯 국회의원이 됐다. 친박으로부터 공천받았으니 이들 역시 친박계가 되는 것은 공식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난 4년, TK 초선 의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친박계는 배신감을 느꼈다. 얼마 전 여당 공천 과정에서 벌어진 사달의 한 이유다.

정치권의 계파는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혹은 대권을 쥔 유력한 인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예나 지금이나 이는 변함없다. 친이(親李)는 대권 주자를 재(再)생산하지 못해 사라졌다. 친노(親盧)는 폐족(廢族)의 위기에 내몰렸지만 문재인이라는 주자를 발굴해내며 살아났다.

유력 주자를 중심으로 모인 계파원들을 끌어안는 울타리는 3김(三金) 시대때만 해도 '공천'과 '돈'이었다. 보스가 공천을 보장해주고 정치자금을 나눠주는데 울타리를 벗어날 이유가 없었다. 지금은 사정이 바뀌었다. 빡빡한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때문에 돈은 옛말이 됐다. 공천도 구시대 잔영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전과 비교할 바 아니다. 요즘의 계파는 유력 주자를 중심으로 뭉쳐 있기는 하지만 돈은 물론 공천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계파가 존재하는 이유는 '브랜드(brand)'다. 의원들은 자신에게 달린 친박, 친노 브랜드로 정치를 한다. 브랜드가 계파원을 끌어안는 구심력이다. 뒤집어 말하면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면 계파원은 두말 않고 계파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간다. 옛날 상도동계가 동교동계가 되기는 어려웠지만 요즘 친박계는 하루아침에 비박계가 된다. 19대 친박 공천을 받은 TK 초선 의원들도 그랬다.

브랜드 가치는 지지층의 크기와 지지 강도에 달렸다. 지지층만 있어서도 안 된다. 대다수 국민의 용인(容認)과 동의가 바닥에 깔려 있어야 한다. 친노는 골수 지지층은 있었지만 국민적 비난의 대상이 되면서 폐족이 될 뻔했다. 최근 친노가 김종인 대표를 앞세워 '털갈이'를 하려는 것도 국민의 미운털을 뽑으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친이 브랜드는 지지층 소멸과 국민의 외면 속에 사라졌다. 2004년 만들어진 친박 브랜드는 2007년 경선 패배의 난관을 이겨내며 2012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민적 용인 위에 단단한 지지층을 확보한 친박 브랜드는 짱짱했다.

하지만 최근 친박 브랜드는 국민의 동의라는 기반부터 흔들린다. 지난 공천 과정에서 친박은 진박(眞朴) 논란으로 국민의 상식을 거슬렀다. 내부적으로야 나름 사정이 있었겠지만 편협하고 옹졸하다는 인상을 줬다. 국민이 등을 돌리면 지지층도 흔들린다. TK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한 것을 친박계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면 계보원을 아무리 많이 모아도 소용없다. 차기 주자를 재생산해내는 일도 어려워진다. 지금은 진박이라며 공천을 받은 인사가 19대 의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친박 브랜드를 언제든 벗어던질 수 있다. 그때 가서 의리 운운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사랑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계파도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