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렌베크(Molenbeek)와 빌보르드(Vilvoorde). 벨기에의 두 도시가 테러의 시대를 맞아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몰렌베크는 작년 11월 파리 테러에 이어 지난 22일(현지 시각) 브뤼셀 테러의 아지트로 알려지면서 '유럽 지하디스트(이슬람 전사)의 수도', '테러범 양성소' 등 악명을 얻었다. 얀 얌본 벨기에 내무장관은 "몰렌베크는 사실상 통제 불가 지역"이라고 했다.

몰렌베크에서 약 12㎞ 거리에 있는 빌보르드는 외양상으로 보면 몰렌베크의 판박이다. 인구 4만2000명 가운데 절반 정도(43%)가 이민자 출신이고, 4분의 1이 무슬림이다. 이민자 출신 가운데 절반 정도가 실업자일 정도로 경제 형편이 어렵다. 그러나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이 도시를 "친절함으로 이슬람 급진주의와 싸우는 곳"이라 평가했다.

[벨기에는 어떤 나라?]

빌보르드는 한때 몰렌베크처럼 위험한 도시였다. 2011~2014년 이 도시에서 30여명이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하려고 시리아로 떠났다. 서유럽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 지하디스트를 배출한 곳으로 꼽혔다. 1997년 이 도시를 먹여 살리던 르노자동차 공장이 문 닫은 것이 계기였다. 공장이 잘 돌아갈 때 불려온 이주노동자들은 실직자 신세가 됐다. 자녀 세대인 젊은 무슬림들도 고스란히 경제 위기에 노출됐다. 한 빌보르드 시민은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직업은커녕 임시직도 없다"고 이코노미스트지(誌)에 말했다.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가 나오는 데 최적의 환경이었다.

변화는 2013년 한스 봉트 빌보르드 시장이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청소년 상담가로 경력을 시작한 그는 젊은이들이 이슬람 급진주의에 빠지는 이유를 이해했다. "젊은이들이 외롭고 고립됐다고 느낄 때 급진주의에 빠진다"며 "우리가 그들을 환영한다고, 지지한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빌보르드 방식'이라는 예방 위주의 대응책을 들고 나왔다. 핵심은 이슬람 급진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시민들을 추려내 말을 건네는 것이다. 가족·친구는 물론, 사회복지사·상담사 등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한다. 이슬람 종교 공동체와 이맘(이슬람 종교 지도자)도 함께했다. 봉트 시장은 "누군가가 급진주의에 빠지려고 하면, 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두를 불러모아 다시 사회에 통합될 기회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변화는 장기간에 걸쳐 이뤄졌다. 빌보르드에서 이슬람 급진주의 대응 활동을 하는 모아드 엘 바우다티는 BBC에 "이슬람 급진주의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은 세탁기에 넣고 돌려 10분 만에 깨끗하게 만드는 것과 다르다"며 "인간관계와 신뢰를 회복하는 것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신뢰를 깨지 않기 위해 경찰 개입은 최소한으로 한정했다. 피해 의식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무슬림 경찰도 늘렸다. 이코노미스트는 "잠재적 지하디스트를 친절하게 대한다는 방침에 논란이 있었지만, 그 결과는 성공이었다"고 했다. 지난 2014년 5월 이후 빌보르드 출신 지하디스트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빌보르드의 성공담은 해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대(對)테러 정상회의에 봉트 시장을 초청해 빌보르드의 성공 비결을 듣고, 이 도시에 국토안보부 전문가들을 파견했다. 매슈 래빗 워싱턴 근동정책 연구소 반테러리즘 연구원은 "적발 위주의 대응은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어도, 내일의 문제를 막지 못한다"고 포린폴리시(FP)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