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은혁(27) 예비역 하사는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의 조타수 부사관이었다. 그는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폭침(爆沈)당했던 그날을 "가족과 집을 잃어버린 날"이라고 말했다. "'쿵' 하는 굉음이 나고 5~10분쯤 기절했던 것 같아요. 선임하사 두 분과 같이 갑판으로 올라갔는데 배 뒷부분이 없어졌어요. 전우들이 그렇게 떠나갔습니다. 그때 이후 저는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죄인이 됐습니다."

26일 천안함 폭침 6주기를 맞아 천안함 생존 장병과 유족들은 "하루하루가 (2010년) 3월 26일 같다"고 했다. 함씨는 천안함 폭침 12일 만에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가진 생존 장병 기자회견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왜 기자회견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회견 전에는 지휘관 지시에 따라 환자복과 전투복을 수차례 갈아입었다"고 말했다. 함씨는 당시 회견에서 장병이 답변할 때마다 "서로 입을 맞췄다" "지시받은 대로 답한다"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는 "당시 수군거림을 지금도 듣는다"고 말했다.

천안함 폭침(爆沈) 생존자인 예비역 하사 함은혁(27)씨가 23일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전사한 전우들의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그는 “전등과 TV를 켜야 잠을 잘 수 있고 천둥 번개가 치는 날에는 외출도 못한다”면서 “자비를 들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천안함 갑판병이었던 최광수(28) 예비역 병장은 2012년 1월 프랑스 소르본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한국에 더는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씨는 "천안함 폭침 이후 두 달 만에 전역을 했는데 차라리 군대에 있을 때가 마음이 편했다"고 말했다. 제대 후 그가 '천안함 생존자'라고 소개할 때마다 사람들이 "보상 얼마 받았어?" "천안함 폭침은 (우리 정부의) 자작극 아니냐"고 물어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군 당국의 사후 조치도 그에게 상처를 줬다. 최씨는 "사건 직후 한 지휘관이 천안함 장병에게 군병원 이용 2년 연장, 예비군 훈련 2년 면제, 국가 유공자 신청 조치 등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재 지켜진 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배를 탔는데 6년 전 그날 상황이 닥친 것처럼 불안했다"고 밝혔다. 파도 소리, 엔진 소리 등을 들은 이후부터 다시 악몽을 꾼다는 것이다.

사단법인 호국보훈협회가 지난 5~8일 천안함 폭침 사건에서 생존한 예비역 22명을 조사한 결과 이 중 16명이 최근 6개월 이내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PTSD는 충격적인 사고를 경험하고 나서 당시 상황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거나 악몽에 시달리는 등의 고통을 겪는 증상을 말한다. 22명 중 10명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고, 5명은 실제 자해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최씨는 "요새는 악몽을 꾸더라도 서로 의지하고 장난치던 전우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갑판병으로 복무했던 전준영(29) 예비역 병장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최전방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살아남았는데 왜 '패잔병' 소리를 듣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유를 따지고 싶다가도 더 큰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천안함 전사자 유족을 생각하면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천안함 생존 장병은 현재 '천우회(천안함 전우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서로를 "가족"이라고 부르며 각종 경조사를 챙긴다고 한다. 천안함 함장이었던 최원일 중령이 생존 장병의 결혼식 때 주례를 선 적도 있다고 했다. 전씨는 "대한민국이 우리를 인정해주지 않으니 우리끼리라도 뭉치자고 다짐한다"고 했다.

MB의 위로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제1회 ‘서해 수호의 날’을 하루 앞둔 24일 국립대전현충원을 방문해 연평도 포격 도발 전사자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서해 수호의 날(3월 25일)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 제1·2연평해전 등 북한의 도발에 맞서 생명을 바친 우리 장병들을 기리기 위해 올해 처음 정부기념일로 지정됐다.

[천안함 폭침 사건 그 이후]

[[키워드 정보] 끝나지 않은 고통,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은?]

24일 천안함 46용사 유족협의회 회원 80여명은 계룡대에 모였다. 25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열리는 제1회 '서해 수호의 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46용사 유족협의회는 최근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500만원을 기부했다. 매달 2만원씩 내는 회비 중 일부를 모아서 성금을 냈는데 이번이 네 번째라고 한다.

고(故) 박석원 상사의 아버지인 박병규(60) 유족협의회 회장은 "아들이 천안함 폭침 보름 전에 월급을 쪼개 모은 돈 100만원을 용돈으로 보내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박 회장은 최근 아들 둘이 더 생겼다. 2012년 입양했다고 한다. 현재 중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1학년이다. 그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초등학생 아들과 찍은 사진이 있다. 박 회장은 "두 아들이 잘 자라서 우리 석원이처럼 대한민국을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