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자당 대표 시절인 1990년 11월 3일 ‘내각제 합의 각서’ 언론 유출에 항의해 당무 거부를 하고 경남 마산에 칩거할 당시 산악회원들과 함께 마산 무학산을 오르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누구?]

['YS 문하생'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누구?]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4일 공천장에 도장 찍는 것을 거부하고 부산으로 내려가자, 1990년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마산행과 비슷하다는 말이 나왔다. 'YS 따라 하기 아니냐'는 얘기다. 김 대표는 '상도동계'로 김 전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배웠다.

1990년 민정당·민주당·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이 출범한 뒤 당내 주류였던 민정계는 민주계인 김영삼 당시 대표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그해 10월 '내각제 개헌 합의각서'를 언론에 공개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 김영삼 대표, 김종필 최고위원 세 사람의 서명이 들어간 문서였다. 그러자 김 전 대통령은 역으로 '민정계의 음모론'을 주장하면서 당무 거부라는 초강수를 던진 뒤 아버지가 살고 있던 마산에 내려가 칩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내각제 합의문이 유출된 진상을 공개하라"며 유출 논쟁을 통해 상황을 역전시키고자 했다. YS는 당시 상도동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과 야당이 내각제 추진을 반대하고 있다. 개헌 추진파가 확실한 개헌 포기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당무 집행을 거부하겠다"며 마산으로 갔다. YS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이 발휘된 것이다.

YS의 승부수에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민정계는 결국 손을 들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김윤환 의원을 마산에 보내 내각제 추진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정계의 '항복'을 받아낸 뒤 대표직에 복귀했고, 2년 후 대통령이 됐다. 김무성 대표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정치적 스승'인 YS의 방법을 떠올렸을 수 있다. 하지만 여당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의 행동이 형식은 비슷할지 모르나 내용은 다르다"고 했다. 현재 권력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과 당무 거부를 하고 지방으로 내려간 것은 비슷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당시 노 대통령은 국민 지지도가 높지 않았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단단한 지지율을 갖고 있다. 당시 YS는 '여론의 지지도 업고 있었지만, 김 대표의 부산행은 당내 공천 갈등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또 김 대표의 현재 지지 기반은 당시 김 전 대통령의 탄탄한 지지 기반에 미치지 못한다는 차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