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고민 끝에 당에 남겠다"]

더불어민주당이 22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김종인 대표가 내놓은 비례대표 공천안을 완전히 뒤집어 친노·운동권 출신들을 대거 당선권에 집어넣었다. 김 대표를 영입해 비상 체제를 가동한 지 두 달 만에 드러난 친노·운동권 정당의 민낯이다. 김 대표는 사퇴 카드까지 내밀며 저항하는 듯했지만 사실상 혼자인 그가 막을 방법은 없었다. 김 대표는 그동안 "운동권당(黨)을 바꾸겠다"며 일부 물갈이를 단행했다. 그러나 운동권은 이를 선거용 위장으로 활용하면서 잠시 묵인해주는 것일 뿐이었다.

김 대표가 내놓은 비례대표 공천 명단이 뒤집어지는 과정은 총선이 끝난 뒤 더민주가 어떤 길을 가게 될지 잘 보여주고 있다. 김 대표의 비례대표 공천안에 친노 주류가 집단 반발하자, 김 대표가 이끌던 비상대책위부터 흔들렸다. 비대위는 김 대표가 없는 자리에서 후순위로 밀렸던 친노·운동권 출신들이 상위 순번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수정안을 만들었다. 김 대표가 반대했는데도 무시하고 이를 그대로 중앙위에 올렸다.

그러자 중앙위원회는 이날 새벽 투표를 통해 곧바로 후순위이던 친노·운동권 인사들을 무더기로 상위권에 전진 배치시켰다. 심지어 애초에 정한 후보 명단에 들어 있지도 않던 친노 인사 3~4명까지 상위 순번에 끼워넣었다. 중앙위에서 압도적 수적 우위를 가진 운동권의 힘이었다.

이 뒤집기로 인해 애초 중상위 그룹에 있었던 20명의 후보 중 9명이 후순위로 처지거나 탈락했다. 이들 대부분은 김 대표가 영입하거나 추천한 경제·안보 전문가 그룹이었다. 대신 농민 운동가 출신으로 노무현 캠프 대구경북 부위원장을 지낸 김현권 후보는 하위 그룹에서 단번에 1순위로 올라갔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차장인 이재정 후보도 4위로 당선 안정권에 들었다. 김 대표가 공천권을 행사한 후보는 본인을 포함해 4명 정도에 그쳤다. 단 하루 사이에 전문가 그룹은 뒤로 밀려나고 친노·운동권이 비례대표를 장악했다.

김 대표가 물러날지, 친노와 적당히 타협하며 당분간 당을 이끌지는 확실치 않다. 그는 거취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갖겠다"고만 했다. 하지만 그가 어느 길을 택한다 해도 운동권당을 합리적 대안 정당으로 바꾼다는 건 헛된 기대였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김 대표 한 사람이 바꾸기에는 더민주 내 친노·운동권의 뿌리는 깊고 넓게 퍼져 있다.

김 대표가 자신의 뜻이 이렇게 묵살됐는데도 당에 남아 있는다면 그의 모든 행위가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배지 다섯 번을 다는 신기록을 위한 것이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합리적 야당을 바라는 많은 국민의 바람을 자신의 영달에 이용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처신은 의원 자리를 탐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들을 무색하게 한다.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국회였다면 4·13 20대 총선은 역대 최악의 선거로 가고 있다. 국정 책임을 진 여당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편 챙기고 네 편 쳐내기로 일관하고, 한때 바뀌나 싶었던 야당은 국민을 속이는 쇼를 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국민의 판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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