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인 특파원

"에스토니아에선 인터넷으로 10분 만에 회사를 설립할 수 있습니다."

인터렉티브 엔터테인먼트 기기 개발업체인 스타트업 '모조스(The Mo'Joes)'의 공동 창업자 안드리우스 지우라이티스는 세계적 대도시가 아닌 북유럽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창업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각종 회계·재무 문제도 인터넷으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며 "스타트업들이 초기 단계에서 겪는 여러 어려움을 정부가 나서서 도와줘 이곳을 택했다"고 했다. 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 3명과 인턴 직원 3명 등 직원 6명 중 에스토니아 출신은 한 명도 없다.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리투아니아 등에서 모였다. 이 회사는 2011년 창업 이후 세계 100여개 도시에 제품을 수출하는 글로벌 업체로 성장했다.

스카이프 기술 총괄 매니저 출신인 스텐 탐키비 대표는 지난 2014년 '텔레포트'라는 새로운 스타트업을 탈린에 설립했다. 텔레포트는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등 세계 주요 도시 1000여곳으로 사업체나 삶의 터전을 옮기려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도시를 추천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탐키비 대표를 포함해 공동 창업자 3명은 모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지만, 실리콘밸리가 아닌 탈린 테크노폴리스를 창업지로 선택했다. 탐키비 대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해야 하는데, 본사가 어디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스타트업에 면세 혜택이 많고, IT 기반이 튼튼히 갖춰져 있어 이곳에서 성공을 일굴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10분 만에 회사 설립

에스토니아가 북유럽 스타트업계의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지난 11일 '에스토니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테크노폴리스 스마트 시티(이하 테크노폴리스)'를 찾았다. 수도 탈린 공항에서 걸어서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빌딩 10여채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 구로디지털단지의 6분의 1에 불과한 규모지만, 세계 최대 인터넷 전화 업체인 스카이프(Skype), 세계 최대 개인 간 해외 송금업체인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e) 등 유니콘(창업 10년 이내에 기업 가치가 10억달러를 넘어선 스타트업)들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 위치한 공유사무실 ‘개러지(Garage) 48’에서 스타트업 ‘모조스’의 공동창업자 안드리우스 지우라이티스(맨 오른쪽)와 직원들이 근무하는 모습. 이들은 “전 세계 100여개 도시를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지만, 에스토니아에 본사가 있어서 불편한 점은 없다”고 했다.

에스토니아에서 스타트업 붐이 본격 시작된 것은 지난 2003년 설립된 스카이프가 2005년 이베이에 26억달러(약 3조원)에 매각된 이후부터다. 에스토니아 정부 스타트업 담당자인 리보 리스토프씨는 "스카이프의 매각 비용은 당시 국내 GDP의 1%에 달하는 수준으로, 우리 경제에 큰 파급효과를 낳았다"고 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발 빠르게 투자금 지원과 면세 혜택, 공공 사무실 임대 등 혜택을 마련했다. 정부 주도로 스타트업 창업 펀드를 만들고, 개인 투자자들을 독려해 2006년 569만유로(약 74억원)에 불과하던 스타트업 투자 금액이 지난해 9623만유로(약 1260억원)로 늘었다. 탈린 중심가에는 '개러지(Garage) 48'로 대표되는 공유 사무실 2곳을 마련해 업무 공간을 제공하고, 주말마다 창업 희망자들을 위한 강연과 토론회를 연다. 전 세계에서 온 젊은이들의 창업이 늘면서 에스토니아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000년 4150달러에서 2014년 1만9030달러로 급증했다.

에스토니아의 ‘이-레지던시(e-Residency)’카드. 이 카드를 발급받으면 국적과 상관없이 해외에서도 2주 안에 에스토니아에 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

특히 IT 기반 행정 서비스를 탄탄하게 구축해 다른 나라와 차별화를 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2001년부터 정부 주도로 국가 데이터 베이스 플랫폼인 '엑스로드(X-ROAD)'를 구축했다. 에스토니아의 400여개 기관·기업을 연결해 이들이 가진 공공 데이터와 기록을 공유하는 정보 처리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곳에 접속하면 자신의 금융·보험·통신 관련 정보를 한꺼번에 파악하고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세계 최초 '인터넷 시민권' 시도

에스토니아는 최근 이런 디지털 서비스 혜택을 전 세계로 넓히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첫선을 보인 '이-레지던시(e-Residency)'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온라인에서 '이-레지던시'에 등록하고, 각국 에스토니아 대사관을 방문해 카드를 발급받으면 국적과 상관없이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 카드를 이용하면 해외에서도 2주면 에스토니아에 회사를 설립할 수 있고, 모든 행정업무를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다.

['스카이프' 탄생한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어디?]

[[키워드 정보] 스타트 업(Start-up)이란?]

'이-레지던시' 카드를 발급받은 일본인 고모리 쓰토무씨는 탈린에 거주하면서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에스토니아에 회사를 설립하려는 외국인들을 돕는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다. 쓰토무씨는 "에스토니아는 유럽연합(EU) 국가이기 때문에 서유럽으로 진출하는 데 저항이 별로 없고, 창업 비용도 다른 EU 나라에 비해 적어 문의가 많다"고 했다.

에스토니아 정부의 이-레지던시 프로그램 총책임자인 캐스퍼 코르저스씨는 "전 세계에서 9500여명이 이-레지던시를 신청했는데, 이 중 800여명이 에스토니아에 회사를 설립했거나, 에스토니아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며 "이들은 실제 에스토니아에 거주하지 않아도 기업 활동을 이곳에서 하기 때문에 외자(外資) 유치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는 "전 세계인에게 사실상 국경을 개방한 이 프로그램은 해외자본과 인력을 끌어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온라인 에스토니아 국민'을 1000만명까지 늘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