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

제임스 샤피로 지음ㅣ신예경 옮김
글항아리ㅣ540쪽ㅣ1만9800원

아무리 셰익스피어(1564~1616)의 400주기라지만, 고리타분하다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세계적 문호(文豪)라고 하더라도, 도대체 언제까지 셰익스피어 노래만 부를 셈인가.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은 그런 냉소적 독서가에 대한 예술적·학문적 반격이다. 물론 독자의 적극적 독서를 전제로 한 지적 모험이지만, 모험의 대가를 충분히 지불해도 좋을 만큼의 탐스러운 열매로 가득 차 있다. 삶과 작품이 일치하지 않은 모순적 문학 천재, 필연적인 진위 논쟁, 옹호와 반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위조와 수수께끼 그리고 음모론에 갇힌 오늘의 우리를 반성하게 하는 교훈까지. 탐정소설의 흥미진진과 수면 아래 삶의 성찰이 이 안에 있다.

잔잔해 보이는 물 밑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잠수함의 선장은 제임스 샤피로(61).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25년 동안 셰익스피어를 가르쳐온 이 분야 최고의 권위자 중 한 명이다. 관록의 지휘관은 우아한 문장과 사료에 바탕한 명쾌함으로 탐정소설 같은 역동적 항해를 유쾌하게 헤쳐나간다.

'햄릿'이나 '맥베스' 등 작품으로만 셰익스피어를 알고 있는 독자에게는 낯설겠지만, 이 문호에게는 오래된 수수께끼가 하나 있다. 바로 셰익스피어는 가짜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현실에서 그의 삶은 의문투성이. 현존하는 셰익스피어 전기는 "5%의 사실과 95%의 상상"이라는 비아냥까지 있을 정도다. 400년 전의 역사 인물임을 고려하면 일견 고개를 끄덕거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의혹의 주제가 충격적이다.

셰익스피어는 가짜라는 주장이 200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사실은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나 제17대 옥스퍼드 백작이 썼다는 의혹이었다. 그림의 화가는 오른쪽부터 반시계방향으로 프란스 푸르부스(1617), 존 테일러(추정·1610), 작자 미상. 아래 그림은 프레더릭 레이턴의 ‘줄리엣의 위장된 죽음’(1858).

이 충격적 의혹의 근거는 적지 않지만, 핵심은 셰익스피어의 삶과 작품이 너무 달랐다는 데 있다. 이런 사료(史料)가 있다. 돈 몇 푼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런던 스트랫퍼드에서 살던 고리대금업자 셰익스피어가 옆집 사는 존 브루크를 고발해 감옥에 집어넣었다. 종종 사재기도 강행한 욕심 많은 곡물거래상이었다…. 이 세속적 뉴스는 문호의 천재성을 설명해주는 실마리를 찾던 예술애호가들이 기대한 자료가 결코 아니었다. 필연적으로 당대의 예술 지상주의자들은 이런 결론을 선호하게 된다. 이 셰익스피어는 우리가 아는 셰익스피어일 리가 없어. 진짜는 다른 곳에!

얼핏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영미권에서 논쟁의 뿌리는 거의 2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49년에 이 의혹을 다룬 책의 서지 목록이 4500번을 넘겼고, 인터넷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은 그 숫자를 파악하기도 어려울 정도. 평범한 대중만이 아니었다. 이 주제가 아니었더라면, 맬컴 엑스와 찰리 채플린, 오슨 웰스와 헬렌 켈러가 한 맥락 안에서 거론될 일은 결코 없었다는 것이다. 환자들에게 "셰익스피어가 정말 셰익스피어를 썼을까요"라고 묻고 다녔던 프로이트, 자신의 자서전 제목을 '셰익스피어는 죽었는가'로 정하며 본격적으로 의심했던 마크 트웨인까지.

그렇다면 진짜 셰익스피어는 누구란 말인가. 이미 그 후보가 50명을 넘긴 현실이지만, 지난 200년간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인물은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과 옥스퍼드 백작(1550~1604)이다. 경험론 철학의 비조(鼻祖)로 아는 르네상스 시대의 영웅 베이컨, 그리고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과 은밀한 관계에 있었다고 의심되는 옥스퍼드의 17대 백작.

정통 학계에서는 이 모든 의혹이 철저히 무시되어 왔다. 샤피로의 책이 의미를 갖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는 "내가 어둠의 세력으로 넘어갔다고 동료는 탄식할지 모른다"는 농담을 던지지만, 성실하고 예리하게 이 주장들의 허구를 입증한다. 그의 가장 큰 미덕은 상대방의 주장을 최대한 선의로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의 주장을 격파하고 있다는 것. 유능하고도 따뜻한 논객만이 지닐 수 있는 장점이다.

샤피로의 마지막 결론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진실일 수 있다. 작가의 실제 삶과 작품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2016년의 잣대로 16세기와 17세기 세계와 삶을 재단하지 말라는 것. 이 모든 수수께끼를 해결하고, 정의로운 선장은 자신이 왜 '어둠의 세력'에 몸을 던졌는지를 설명한다. 내 관심사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느냐는 것.

어쩌면 지금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이야기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믿고 싶은 주장만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 옥스퍼드 지지자와 베이컨 지지자 그리고 심지어 셰익스피어 지지자마저도, 자신의 입장은 확고부동하며, 토론은 무의미하거나 각자의 이익만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흥미롭지만 반드시 유쾌하지만은 않은 400년 전 추문을 지금 읽는 의미도 이 역설적 깨달음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