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지역구 경쟁력이 있는 의원들을 대거 공천에서 배제했다. 정치권에선 "선거에서 이길 생각으로 하는 공천이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당내 비박계에선 16일 "지역구 몇 곳을 잃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당에서 내보내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친박계 인사들은 "의석 몇 개보다 정체성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며 "그런다고 해당 지역 선거를 꼭 진다고도 볼 수 없다"고 했다.

'이길 수도 있고, 져도 그만?'

이재오 의원이 배제된 서울 은평을의 경우 더불어민주당(더민주) 강병원, 국민의당 고연호 후보 등이 팽팽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달 초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이 의원은 36.8%, 강 후보와 고 후보는 각각 17.4%와 15.3%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 의원이 그대로 출마한다면 쉽게 이길 수도 있는 구도다. 그러나 이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4자 대결이 되면서 승산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친박계는 "야권 분열 구도로 인해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 고정 지지층 35%만 모아도 된다"며 이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주호영 "억울합니다"… 김무성 "최고회의 같이 가봅시다" - 김무성(오른쪽) 새누리당 대표가 16일 오전 국회에서 공천 탈락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주호영 의원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주 의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공천 결과가 부당하다고 항의했고 최고위원회는 공천 재심의를 요청했으나, 이한구 당 공천관리위원장은 이를 반려했다.

'져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또 다른 지역은 경기 성남 분당갑 같은 곳이다. 유승민 의원의 오른팔 격이었던 이종훈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여권 분열로 인한 패배를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이 의원은 51.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43.7%의 민주통합당 김창호 후보를 꺾었다. 7.8%포인트 근소한 차이였다. 현재 야권에서는 더민주의 영입 인사 김병관 웹젠 이사회 의장이 이 지역구 유일한 예비 후보로 등록돼 있다. 여권 분열로 야당이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얻을 상황인 것이다. 임태희 전 의원을 컷오프시킨 분당을 지역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임 전 의원은 이날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찍혀서'라는 이유라도 있지만 그나마 그런 이유도 찾기 힘든 경우도 있다. 대구 달성에서 출마했던 구성재 예비 후보는 전날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에게 밀려 경선 기회도 갖지 못하고 공천에서 배제됐다. 구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상대 후보에 10%포인트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왔는데 이해할 수 없는 결과"라며 "당에 재심(再審)을 신청하겠다"고 했다. 구 후보는 비박(非朴)계도 아니다. 추 전 실장에게 배지를 쉽게 달아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상당한 지지층이 있는 구 후보가 나올 경우 당선을 장담할 수 없다. 실제로 2010년 달성군수 선거 때 박근혜 당시 의원 측은 여론 지지율에서 처지는 후보를 군수로 밀다가 패배한 적이 있었다.

당내에선 박 대통령 의중 반영으로 봐

[김무성 '이한구의 공천' 비판]

당내에서는 이런 공천에 대해 "청와대 의중을 무리해서 반영하다 보니 생긴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관건은 이런 공천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이다. 친박계는 "수도권에서 3~4석 정도 손해 볼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윤상현 의원의 '컷오프', 황우여 의원의 험지 출마 등으로 친박계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준 만큼 전반적인 총선 민심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더민주와 국민의당 통합·연대 가능성이 희박해졌기 때문에 일부 지역구에서 여권이 분열해도 승산(勝算)이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40%대 중반을 유지하고 있는 박 대통령 지지율도 믿고 있다.

수도권의 한 친박 중진 의원은 "우리도 개별적 지역 선거에서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하지만 총선과 그 이후 국정 운영이라는 전장(戰場)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다"고 했다. 그러나 비박계 탈락자들은 "임기 이후까지 내다보고 박 대통령이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과반 의석을 아예 포기하고 선거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