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갑식 선임기자

이세돌과 알파고의 결전을 감상했다. 토요일 열린 제3국을 TV로 볼 때 알파고의 기풍이 임해봉이나 이창호와 흡사하다고 느꼈다. 두 기사는 별 재주 부리지 않고 뚜벅뚜벅 판을 두텁게 이끌며 이기는 스타일이다.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서의 내 기력(棋力)이 아마 7단이라도 세기의 대국을 논하는 건 주제넘는 일이다. 다만 평소라면 놓치지 않았을 2국과 5국마저 이세돌이 지는 것을 보며 '반전무인(盤前無人)'이라는 말을 되새겼다. 바둑 둘 때 상대를 의식하지 말라는 '반전무인'에 도쿠가와 막부 시대의 고수 이노우에 인세키(井上因碩)는 '반상무석(盤上無石)'을 덧붙였다. 바둑판에 돌이 없는 것처럼 무념무상의 자세로 임하라는 것인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실력 비슷한 상대를 흥분시키는 수법은 헤아릴 수 없다. 돌 놓을 때 잔뜩 힘주기, 바둑돌 딱딱거리기, 쥘부채 접었다 폈다 하기부터 다리를 경망스럽게 달달 떨거나 담배 연기를 바둑판에 안개처럼 뿜어대며 신경을 긁어대면 석불(石佛)도 성을 낼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불리한 형세인데 상대 입에서 연방 "망했네! 망했어"라는 말에 약올라 하지 않는 이를 본 적이 없다. 이것은 지금 전자계산기 수준인 알파고가 사람 말을 알아듣는 다섯 살 정도의 지능 혹은 감정을 느끼는 순간 상황이 또 다르게 바뀔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음미해볼 대목은 따로 있다. 왜 미국 구글과 영국 딥마인드는 자신들이 개발한 괴물을 상대할 인류 대표로 이세돌을 지목했느냐는 것이다. 분명 바둑은 중국이 발상지고 '고(碁)'라는 일본어가 바둑의 대명사가 될 만큼 일본에서 꽃피웠다. 그들은 전성기도 지났고 현재 세계 1위도 아니지만 자유로운 영혼의 이세돌이 알파고에겐 최적의 훈련 교관이라 여겼겠지만 나는 전통(중국)·모방(일본)·개척정신(미국)·창의력(영국)의 풍토가 약한 한국의 사활이 인재 양성에 달렸다고 알린 우연한 계시라고 본다. 알파고는 국·영·수 공부에 목매고 변호사·의사가 최고의 목표이며 나중엔 9급 공무원 되는 것만이 살길이라 믿는, 도전은 하지 않고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 골몰하는 우리에게 차원 다른 숙제를 낸 게 아닐까? "오로지 명문대, 좋은 회사 들어가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라 믿으면서 청년실업과 저성장의 답을 구하려 한다면 앞으로 펼쳐질 인공지능 앞에 무릎을 꿇는 최초 식민지는 바로 대한민국, 너희가 될 것"이라는.

토요일 3국을 TV 생중계로 본 이유가 있다. 토요일의 내 임무는 아이가 강북 집에서 대치동 학원까지 세 시간 수업을 받으러 오갈 때 안전하게 '배달'하는 것이다. 행마(行馬)하기 어정쩡한 상황에서 찾아낸 나름의 묘수가 9000원짜리 지하 찜질방이었다. 1960년대형 교육이 아직도 행세하는, 학원가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그곳에서 3시간 동안 인간과 맞설 기계를 만든 이들의 개척정신과 창의력의 진수(眞髓)를 만끽한 뒤 밖으로 나왔을 때 꽤나 익숙했던 광경에 새삼 모골이 송연해졌다.

파리한 얼굴에 묵직한 책가방을 들고 회색빛 학원가를 방황하는 수백의 아이들과 그들을 뒷바라지하는 것만이 활로라고 믿는 '586' 아버지 어머니가 끌고 나온 승용차로 아수라장이 된 도로에서 내 수읽기는 아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