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고려대·연세대·카이스트·포스텍 등 이공계를 대표하는 5개 대학이 기초과학 연구를 양적(量的)으로 평가하는 정부의 행태를 바꿔야 한다는 취지의 공동선언문을 곧 발표한다고 한다. 각 대학 연구비의 60~80%를 지원하는 정부가 연구 방향을 일일이 지시하고 2~3년 단위로 성과를 평가해선 미래가 없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행동이다.

정부의 과도한 간섭이 문제라는 인식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연구개발 예산은 작년 19조원에 달하고 연구개발비 투자율도 전 세계 1위이다. 그런데도 기업 간 기술협력(22위), 투자 대비 기술수출(26위), 논문 피인용도(29위) 같은 실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바닥이다.

과학계는 연구자가 택한 주제에는 1조원 남짓 지원될 뿐이고 나머지는 관료들이 나눠주다 보니 창의적인 연구가 시작부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해외 석학 12명도 서울대 자연대를 평가하며 "성과에 치중하느라 기존 연구를 답습한다"고 했다. 정부가 이런 문제를 개선한다고 하니 앞으로 과학자들이 긴 호흡으로 연구하는 풍토가 정착될지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시급한 것은 과학계가 먼저 윤리 의식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2년 전 정부가 연구비 집행 상황을 조사했더니 석 달 새 62개 기관에서 50억원이 넘는 비리가 적발됐다. 이래서는 연구비 지원 방식을 바꾼다고 성과가 나올 리 없다. 정부는 연구비를 세 번 이상 유용하면 유용액의 3배를 과징금으로 물리겠다는 방침이다. 과학계는 이런 제재를 자초한 스스로를 반성하고 뼈를 깎는 자정(自淨)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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