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종합병원 외과 진찰실, 의사가 중년 여성 환자에게 묻는다. "병원에 어떻게 오시게 됐나요?" "목욕탕에서 때 밀어주던 아주머니가 유방에 딱딱한 멍울이 만져진다며, 진료를 받아 보라고 해서 왔어요." 실제로 이렇게 해서 유방암 진단을 받는 여성이 꽤 된다. 정기 암 검진이 적었던 수년 전까지만 해도 유방암 환자 절반 가까이가 목욕관리사 또는 세신사에 의해 종양이 발견돼 병원 문을 두드렸다. 지금도 유방암 서너 개 중 하나는 최초 진단이 목욕탕에서 시작된다.

그들이 유방암을 잘 찾아내는 데는 의학적인 근거가 있다. 목욕대에 누운 상태에서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리면, 유방과 겨드랑이가 넓게 펴진다. 종양이 도드라지고 손에 잘 걸리게 되는 자세다. 유방암이 가장 먼저 번지는 곳이 겨드랑이 림프절이기도 하다. 세신사는 비누나 로션을 묻혀 몸을 닦으니 가슴 촉진이 부드럽고 섬세하다. 유방암 자가 검진도 이 방식을 권한다. 그들은 또한 많은 이의 살을 만져봐 촉각이 예민하고, 직감적으로 비정상 종양을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초기 조그만 유방암을 곧잘 잡아낸다. 그런 경우, 유방은 놔두고, 암 덩어리만 제거해도 치료가 끝난다. 훗날 자신의 생명과 유방을 지켜준 '목욕탕 명의(名醫)'에게 감사 선물을 하는 환자도 많다.

한 대학병원에서 50대 후반의 '사모님'이 유방암 수술과 항암제·방사선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남편이 외과 의사다. 종양은 이미 꽤 자라 있었고, 암은 겨드랑이로 퍼져 있었다. 유방암 병세가 초기 상황을 넘어섰다. 병원에서 뒷말이 나왔다. "외과 의사 남편 있으면 뭐에 써. 유방 멍울 만져보는 목욕탕 아주머니가 더 나은걸…."

프랑크 호프만이라는 독일 의사는 유방암 검진을 수년간 해왔다. 그는 유방암 의심 덩어리를 조기에 잡아내는 촉진이 중요하다고 봤다. 하지만 진료 일정이 빡빡해 환자의 유방을 세세히 만져볼 시간이 없었다. 기껏해야 한 사람당 3분 정도였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그에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촉각이 뛰어난 시각장애인 여성에게 유방암 촉진 검사를 맡기면 어떨까? 그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시각장애인에게 유방암 알갱이와 일반 멍울의 다른 특징을 교육하고, 촉진 요령도 가르쳤다. 그러자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일반 여성은 유방암 의심 덩어리를 1~2㎝ 되는 크기만을 잡아냈는데, 시각장애인은 6~8㎜까지도 찾아냈다.

[[키워드 정보] 유방암이란 어떤 질병인가?]

이에 그는 '발견하는 손'(Discovering Hands)이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이른바 사회적 기업이다. 시각장애인 여성을 규합해 유방암 촉진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켰다. 점자(點字) 좌표를 이용하여 유방을 순서대로 만지는 매핑(Mapping) 시스템도 개발했다. 촉각이 뛰어난 이들 시각장애인 '검진의'는 최대 30분 가까이 투자해서 딱딱하고, 움직이지 않고, 울퉁불퉁하고, 거친 질감의 유방암 알갱이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고, 여성은 좀 더 효율적인 유방암 조기 발견 검사를 받게 됐다. 이 공로로 그는 의료 분야 사회공헌자에게 주는 '아쇼카' 상을 받았다.

구두 닦기와 굽갈이를 오래한 구두 수선공들은 손님 중 누구의 관절이 부실한지를 안다. 양쪽 무릎이 바깥으로 휜 '오(O)자' 다리 사람은 걸을 때 무릎 안쪽 연골이 잘 닳아서 퇴행성 관절염이 잘 온다. 이들은 걸을 때 발뒤꿈치 바깥쪽이 땅에 세게 닿는다. 이에 구두 뒷굽 바깥쪽이 유난히 빨리 거칠게 닳아 없어지는 사람은 퇴행성 관절염이 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느낀다고 말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무당이 정신분열증 같다며 '환자'를 병원으로 보내면 진단이 틀림없다고 말한다. 베테랑 무당은 '굿판' 대상이 정신과 약물치료를 받아야 나을지, 푸닥거리로 정신이 좋아질지를 귀신같이 안다는 것이다.

두 해 전, 한국유방암학회와 한국목욕관리사연합회가 유방암 조기 검진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했다. '핑크 스크럽(Pink Scrub·핑크 때밀이)' 캠페인이다. '핑크'는 유방암 예방과 조기 발견을 뜻하는 상징 색깔이고, '스크럽'은 유방을 정기적으로 촉진하자는 의미다. 유방암학회는 목욕관리사들에게 정확한 유방암 촉진법을 가르쳤다. 한국 여성의 생활 문화와 기막히게 어우러진 한국형 암 캠페인이다. 질병은 우리의 삶과 생활 속에 숨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질병 찾기는 의사만의 영역이 아니다. 오래 겪고, 자주 접하면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척하면 보이는 직관이 누구에게나 생기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