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그대'를 압도할 K드라마의 탄생이다. 배우 송중기는 대한민국 여심(女心)에 불을 지른 '방화범'이 됐다. "아이 재워놓고 휴대전화로 이불 뒤집어쓰고 봤다" "남편 몰래 1편부터 6편까지 세 번씩 봤다"는 여성 시청자들 '간증'이 쏟아진다. 요즘 여자들끼리 모이면 송중기 상찬(賞讚)에 다른 얘기할 겨를이 없다. 만약 그 모임이 수·목요일 저녁이라면 밤 9시가 되기 전 황급히 끝날 가능성이 높다.

KBS2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드라마를 넘어 신드롬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10일 방영된 6회는 시청률 28.5%(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특전사 장교 유시진(송중기)과 의사 강모연(송혜교)이 가상의 국가 우르크를 배경으로 펼치는 로맨스가 줄기다. 매회 치솟는 인기는 이미 국경을 넘었다. 중국 동영상 사이트 아이치이(愛奇藝) 시청 조회 수가 4억4000만회로 신기록을 세웠다. '송중기 상사병' 주의보가 내려졌단다. 일본에도 회당 약 10만달러에 판매됐다. '겨울연가' 열풍이 재현될 조짐이다.

참 이상한 점은 이 드라마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남자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군대 생활이 드라마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고, 호쾌한 액션 장면이 많은데도 "그런 황당한 이야기에 내 인생을 소진하고 싶지 않다"거나 "아내는 입을 3㎝쯤 벌린 채 드라마를 보고 나는 그런 아내를 째려본다"는 식의 반응이 대부분이다.

남녀의 갈등은 흥행을 견인하는 송중기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뽀얗고 해맑았던 소년 송중기는 제대 후 첫 복귀작인 이 드라마에서 근육질 상반신을 드러내며 '상남자'로 돌아왔다. 최수현 기자는 "여자 주인공을 신데렐라로 만들어줄 만한 돈과 권력은 유시진에게 없지만, '가모장(家母長)' 시대라는 말까지 나오는 요즘 여성들에게 그런 건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 힘으로 이루면 되는 거니까"라고 했다.

지난 10일 방영된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한 장면. 지진으로 아비규환이 된 현장에서 유시진(송중기) 대위가 의료봉사단 강모연(송혜교)의 신발끈을 묶어주고 있다. 이날 시청률 28.5%를 기록했다.

['여심 저격수' 배우 송중기는 누구?]

대신 유시진 대위는 애교 넘치면서도 싸움도 잘하는 남성다움을 지녔다. 성숙하고 책임감도 강하다. 현실 속 유약한 '초식남'들에게 지친 요즘 여성들이 기다려온 완벽한 남성상이다. 남자들이 이상형으로 내세우는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여성' 비슷하달까. 하지만 '아저씨' 신동흔 기자는 팔짱을 낀 채 삐딱한 자세로 드라마를 본다. "여자들이 군대를 안 가봐서 잘 모르나 본데, 대부분의 남자는 저렇듯 멋지게 군 생활을 하지 않는다. 남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악몽이 군대 다시 가는 꿈이라는 것만 알아달라."

물론 송중기라는 거대한 콩깍지를 벗겨놓고 보면 이 드라마엔 불편한 점이 많다. 원작이 '작가들의 국가고시'라 불리는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수상작인데도 드라마에 서사가 보이지 않는다. 김윤덕 기자는 "송혜교의 자동차가 벼랑 끝에 매달리는 것도, 우르크의 대지진도 오로지 송중기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일어난다"며 혀를 찼다. 여성이 매번 민폐 끼치는 역할로 등장하는 것도 거슬린다. 김 기자는 "사투를 벌여야 할 지진 현장에서도 미니스커트를 입고 뛰어다니는 송혜교는 의사가 아니라 소풍 나온 여대생처럼 보인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드라마에 '애국' '군국'의 분위기가 풍긴다며 의심한다. '군인은 날마다 수의를 입고 산다' '애국심은 왜 군인만 가져야 합니까?' 같은 대사들 탓이다. 지나친 엄숙주의다. TV드라마는 안테나를 뾰족이 세우고 보는 장르가 아니다. 소파에 널브러져 하루의 피로를 풀며 느긋하게 보아야 제맛. 신동흔 기자는 "제목은 대하드라마로되 실제는 달달한 로맨스가 전부"라고 꼬집지만, 두 여기자는 "너저분한 현실에서 잠시 탈출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남편들이 째려보거나 말거나, 여자들은 그저 방송사에 전화 걸고 싶다. "16부작을 50부작으로 제발 늘려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