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주요 대기업 54곳이 일제히 개최한 주주총회에서 이사 권한을 강화하고 배당을 늘리는 '주주 배려'가 화두로 떠올랐다. 삼성 계열사들은 대표가 겸해온 이사회 의장을 등기이사에게 맡겨 이사회 독립을 강화했고 현대자동차는 기업지배구조 헌장까지 발표하며 투명 경영을 약속했다. 스무 곳 넘는 대기업들이 비슷한 조치를 내놓았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포스코는 분기마다 배당을 할 수 있게 규정을 바꿨다. 재벌 경영권이 3세, 4세로 넘어가면서 "오너 일가가 책임은 안 지고 권한만 대물림한다"는 여론을 의식한 조치지만 대기업들이 이제라도 주주 배려에 나선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문제는 대기업 중 10년, 20년 후를 내다본 신사업 전략을 내놓은 곳이 적은 현실이다. 이날 주총 안건으로 신사업을 추가한 기업은 4곳에 불과했다. LG화학이 종자와 비료업에 진출하고 포스코가 기술 판매와 엔지니어링 업무를 겸하는 등 의미 있는 시도도 있지만 나머지는 단순히 취급 품목을 늘리거나 교육·문화 활동을 강화하는 수준이라 '신사업'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하다.

글로벌 기업들은 10여 년 전부터 인공지능, 드론, 무인자동차, 우주여행 같은 굵직한 신산업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세돌을 꺾은 알파고의 뒤에는 14년간 인공지능 사업에 33조원을 퍼부은 구글의 뚝심이 있다. 3년 전 드론을 활용한 택배업 진출을 선언한 아마존은 올해 시범사업에 나선다.

올해 국내 30대 그룹이 계획한 투자금액은 122조원에 달해 규모로는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투자액의 70% 이상이 기존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공장을 늘리거나 신설하는 데 쓰인다. 경제 혁신을 주도해야 할 대기업들이 하던 일만 계속하며 '가보지 않은 길'은 외면하고 있다. 철강, 중공업, 조선, 가전 등 주력 업종의 대기업 매출은 2년째 뒷걸음치고 있다. 그런데도 미래 먹거리를 찾는 노력을 외면한다면 결국 주주들도 등을 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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