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들 "서울대, '따라하기 과학'만 한다"]

[김성근 서울대학교 자연대학장은 누구?]

"해외 석학들이 서울대 자연과학대에 보낸 경고를 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김성근(59·사진) 서울대 자연대학장은 9일 해외 석학들이 자연대의 연구 경쟁력에 대해 신랄한 평가를 내린 데 대해 "우리의 현주소를 고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학장은 지난해 2월 노벨상·필즈상 수상자 등 해외 석학 12명에게 자연대 연구 역량 등에 대한 평가를 자청해 최근 최종 보고서를 받았다. 〈본지 3월9일 자 A1·3면

그는 이날 본지 인터뷰에서 '지금처럼 해선 서울대가 세계 톱클래스 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어렵다'는 석학 평가단의 경고에 "틀린 말이 없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평가가 세계 10~20위권까지 성장해온 서울대 자연대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김 학장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화학물리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고 1989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해 왔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팀 헌트 전(前) 영국 암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등 해외 석학 평가단은 보고서에서 경직된 교수 채용 시스템, 단기(短期) 성과와 실적에 치중하는 연구 풍토 등을 서울대 자연대의 문제로 지적했다. 또 원로 교수가 정년퇴직하면서 자기 전공 분야를 연구한 '복사판(copy)' 후배를 그 자리에 앉히는 풍토도 학문적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았다.

김 학장은 이에 대해 "우리가 그간 국내 최고 대학의 자리에 안주해온 게 사실"이라며 "석학들이 지적한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 단과대 차원의 내규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세계 일류 대학들의 교수 채용 원칙은 '분야나 학과별 쿼터(할당)에 상관없이 가장 우수한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라며 "우리도 후배 교수를 채용할 때 자기 분야를 지키겠다는 애착이나 책임감에 매달려선 안 된다"고 했다.

김 학장은 교수들이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고만고만한 연구에 매달린다는 석학들의 지적에 대해 "우선 기초과학의 성과를 질(質)보다 양(量)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 과학계의 정량적 평가 시스템과 단기간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실패로 간주하는 풍토 때문에 젊은 연구자들이 남이 가지 않은 길보단 '성공이 예상되는 길'을 좇는다"는 것이다.

그는 "가수 조용필씨가 단순히 음반이 많이 팔려서 최고의 가수로 인정받는 게 아니지 않으냐"면서 "과학계의 평가 기준도 논문 숫자가 아니라 미래를 짊어질 모험적 도전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했다. 김 학장은 "최근 자연대 차원에서 교수 심사 때 논문 수로 평가하는 관행을 일부 없앴고 앞으로 모험적 연구에 도전하는 연구자에게 10년 동안 성과를 재촉하지 않고 연구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김 학장은 "서울대 자연대는 현재 막강한 교수진과 학생들을 확보하고 있지만 창의성이나 과학적 열정이 가장 왕성한 시기에 있는 '박사 후(後) 과정(포닥·Post Doctor)' 연구자들이 수적으로 부족한 '모래시계형' 인적 구조를 갖고 있다"며 "이는 연간 3000만원 수준의 지원을 받는 포닥 연구자들이 해외 우수 대학을 찾아 떠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세계 일류 대학의 연구 역량은 포닥 연구자들로부터 나온다"며 "포닥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