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동 한국조폐공사 사장

주유기를 조작해 주유량을 속이는 일이 흔하다. 적발된 업소가 2014년 87곳에서 지난해 149곳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그동안 주유량 조작은 '인코더'라는 주유기 제어 장치를 이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렵게,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고 불법 프로그램을 설치한 사례가 적발되고 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암호를 입력하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주유기가 작동하도록 하는 등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 지난달 적발된 주유소들은 인근에 있는 경쟁 주유소보다 평균적으로 리터당 40원가량 싼값을 내걸어 소비자를 유혹한 뒤 주유량을 속였다. 서울 강동구의 한 주유소는 이런 방식으로 하루 약 100만원씩 부당이득을 챙겼다고 한다.

대책은 있다. 주유기 형식 승인 기관인 KTC(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와 한국조폐공사가 '주유기 불법 조작 방지' 국책 과제에 참여해 주유기 프로그램 조작을 원천 차단하는 보안 인증 기술, 주유기 전자 봉인 보안 모듈 개발에 성공했다. 디지털 보안 기술을 활용한 ICT 융·복합 보안 기술을 적용해 사물인터넷, 사물 지능 통신 기기의 내장 소프트웨어에 대한 위·변조를 방지하고 기기들의 네트워크 통신에 필요한 보안 기능을 제공한다.

보안 모듈을 주유기 메인 보드에 장착해 주유량을 조작하는 불법 프로그램의 설치를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올해부터 모든 주유기는, KTC에서 발행한 인증서가 유효한 프로그램만 메인 보드에 설치할 수 있도록 개발해 보급되고 있다. 주유량을 조작하는 불법 프로그램은 승인 기관으로부터 유효한 인증서를 발급받을 수 없기 때문에 메인 보드에 설치되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온라인 단계에서는 사물인터넷 기술을 적용, 주유기를 네트워크에 연결하고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주유소마다 통신 게이트웨이가 설치되고 주유기는 KTC의 서버로 연결되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된다. 모니터링 시스템에 조작이 감지되면, 감독관이 현장에 출동하여 보안 모듈을 스마트폰에 연결, 계량 조작 여부를 파악하여 단속할 수 있다. 이미 일부 지역에 보안 모듈이 장착된 주유기가 설치되었다. 현행 주유기까지 보안 모듈 설치를 확대하면, 주유기 조작은 근절할 수 있다. 정부 차원의 기술 기준 제정과 예산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