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논설주간

지금 여당 친박·비박은 정신적 분당(分黨) 상태라고 한다. 야권의 문재인과 안철수는 같은 당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어서 갈라섰다. 한 사람은 운동권 출신이고 또 한 사람은 그 반대에 가까운 삶을 살았으니 이념과 노선이 융화되기 어렵다. 그런데 여당의 친박과 비박 사이엔 안보와 경제, 사회문제에서 함께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 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과시켜 달라고 하는 쟁점 법안엔 비박도 모두 찬성이다. 이런 사람들이 사실상 분당 상태라니 어이없다.

여당 의원들에게 들어보니 상당수가 '김무성 대표가 대통령 꿈을 꾸고 있고, 박 대통령이 이를 무슨 일이 있어도 막겠다고 나선 것'이 이 분란의 배경이라고 한다. 김 대표가 대통령 자격이 있는지 여부는 자연스레 드러나게 돼 있다. 박 대통령은 그걸 기다리지 못하고 '막겠다'고 한다. 대통령이 여당 대선 후보 결정에 개입하면 사달이 나지만 못 참고 나선 것이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 관계가 결정적으로 끝난 것은 정부 부처 세종시 이전을 놓고 '안 된다'는 이명박 대통령과 '해야 한다'는 박근혜 대표가 대립했던 2010년이었다. 그때 김무성 원내대표가 이 대통령과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서울과 세종시로 양분된 데 따른 비효율 문제는 지금도 논란이다. 국가적 사안이니만큼 김 대표가 박근혜 계파라 해도 자신 나름의 의견을 낼 수 있는 문제였다. 지금 와 보니 이때가 분수령이었다. 어쨌든 세종시 문제가 박 대통령 뜻대로 됐으니 다 털고 포용했으면 지금 대통령이 야당도 아닌 여당 사람들, 이념과 노선이 다르지도 않은 사람들과 이렇게 무섭게 싸워야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김 대표의 이 '배신'을 용납하지 않았다. 포용하지 않으니 박 대통령 취임 후 여당 대표 경선이 친박 대 친박이 아니라 친박 대 비박 싸움이 돼버렸다. 거기서 비박 김 대표가 이겼다. 김 대표만 이긴 게 아니라 유승민 의원까지 박 대통령이 내세운 사람을 이기고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충격에 빠진 박 대통령은 이번 4월 총선 때 당을 다 바꿔버려야겠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김무성 여당 대통령 후보'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느꼈을 것이다. 그러고선 김 대표, 유 원내대표와 실질적 관계를 단절했다.

그러자 김 대표는 당대표 경선에서 자신을 이기게 해준 현재의 당내 구도를 4월 총선 후에도 지키려 나섰다. 김 대표가 주장하는 상향식 공천은 정치 개혁이기도 하지만 현역 의원이 그대로 공천받기 쉽다. 박 대통령은 '전략 공천'이란 이름으로 새 인물을 최대한 많이 당에 집어넣으려 한다. 지금 여당에서 매일 벌어지는 막말 추태가 바로 이 충돌이다. 박 대통령이 포용했으면 모두 수하(手下)에 있었을 사람들, 그렇게 하지 않아 적(敵)이 된 사람들과의 본격적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 때 김종인씨를 영입해 상당히 효과를 보았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 제대로 된 전화 한 통화 없었다고 한다. 김씨가 '경제 민주화'와 관련해 쓴소리 몇 번 한 결과다. 경제정책에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래도 불러서 밥 한 끼 같이 하며 대화할 수 있었지만 일절 없었다. 사람은 이럴 때 원한을 품는다. 더민주당으로 간 김씨는 지금 속으로 이를 악물고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사사로운 연(緣)을 끊고 산다. 김종인씨만이 아니라 대선 때 자신을 지지한 원로급 상당수에 대해서도 전화 한 번 하지 않았다. 동생 박지만씨도 보지 않는다. 그 때문에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주변과 친·인척이 대통령과의 연을 내세우며 비리를 저지른 사건은 아직 없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사연(私緣)만이 아니라 아예 사람들과의 관계 자체를 끊은 것만 같다. 박 대통령 밑에 있다가 이제는 적(敵)이 된 사람들 대다수는 마음을 터놓는 전화 한 통화로 풀어질 수도 있는 경우였다. 김무성·유승민과 단 한 번이라도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화를 했다면, 김종인씨에게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고맙다고 인사했다면 이런 사이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정치 세계라도 인정(人情)은 사람을 움직인다.

총선 후 김무성 대표는 7월에 물러난다. 그러면 친박 핵심인 최경환 의원이 당대표에 나설 것이다. 최경환 체제가 탄생한다면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가 대선 후보 비박 배제일 것이다. 반면 비박도 더 이상 박 대통령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다음 총선 때 대통령은 박근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당이 총선을 이기든 지든 박 대통령의 성격과 비박이 가진 반감으로 볼 때 무슨 일이 벌어질 듯한 예감이 든다. 누가 봐도 집권당이 이래도 될 때가 아니지만 인정이 메마른 땅이 갈라지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