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산 스님 경허·만공선양회장

"총독부는 조선 불교에 간섭하지 말라. 우리 조선 승려에게 전부 맡기는 것이 유일한 진흥책이다."

일제강점기 서슬 시퍼런 조선총독에게 마곡사 주지였던 만공 스님이 내린 불호령이다. 우리는 흔히 의승군(義僧軍)이라고 하면 임진왜란 당시 거병한 스님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도 독립을 쟁취하기까지 스님들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

만해 한용운 스님이 상해 임시정부 활동 자금을 국내에서 모금할 수 있었던 것은 만공 선사 같은 스님들의 협조 덕분이었다. 조선총독부가 31개 본사 주지 대회를 개최, 조선 불교의 일본화를 도모했을 때 만공 선사께서 분연히 단상에 올라 외친 '할(喝)'은 사명 대사가 "조선에서 보배로 삼을 것이 있다면 그 목에 현상금이 걸려 있는 가토 기요마사 당신의 머리뿐"이라고 한 것보다 더 격렬한 정신적 폭탄 투척이었다.

당시 만공 선사는 "데라우치 전임 총독은 조선 불교를 망쳐놓은 장본인인데 감사할 일이 없다. 내선일체를 강요하지 말고 조선 스님들에게 맡겨두는 게 조선 불교 진흥책"이라는 요지의 일장연설을 했다. 총독과 치안감인 전 데라우치 총독의 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한 이 연설은 목숨을 돌보지 않고 한 말이고,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하지만 이후 국가의 처신은 너무 다르다. 선조는 사명 대사를 비롯한 많은 스님의 공로가 컸음을 인정하고 표충사를 지었다. 조선이 당시 유교 국가였는데도 사명 대사에게 비록 명예직이지만 영의정에 해당하는 가의(嘉義) 직위를 내리기도 했다. 반면 현재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펼친 스님들을 푸대접하고 있다. 특히 만공 선사에게는 아무런 예우도 하지 않고 있다.

만공 스님은 의친왕, 김좌진 장군, 만해 스님과도 깊은 교류를 했다. 이는 만해의 상좌인 춘성 스님 등의 증언으로 남아 있다. 건국 후 대통령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국가유공자를 살피는 일에 등한했다. 정부는 업적이 잘 알려져 있지 않고, 특히 복역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서훈을 거부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서훈에서 투옥과 복역 기록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기여도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불교계에서는 기록으로 남지 않은 많은 스님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불교계 내에서도 재조명 움직임이 일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