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는 친노(親盧) 패권주의에 대해 "당대표 자리도 내놨으니 패권을 부리려야 부릴 수 있겠느냐. 과거로 돌아가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내세운 친노 패권과 운동권 정당 청산에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국민의당에 통합을 제의하면서도 같은 명분을 내세웠다.

김 대표 취임 후 더민주에 변화 움직임이 나타난 건 사실이다. 친노 일부가 공천에서 배제되는 대신 기업인, 안보 전문가가 빈자리를 채우고, 운동권의 과격한 목소리도 잦아들고 있다. 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당 지지율도 올랐다. 김 대표는 지난달 1차 현역 컷오프에서 문희상·유인태 의원 등 범친노 중진과, 각종 비리로 재판을 받거나 구설에 올랐던 신계륜·노영민·김현 의원 등을 공천 탈락시켰다. 광주의 3선 강기정 의원도 배제했다. 하지만 이후 친노·운동권 핵심에 대한 본격적인 청산 작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더민주가 친노·운동권 정당에서 합리적 민생 정당으로 정말 바뀔지 의구심을 갖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김 대표는 애초 현역 재선·중진 30~50%도 정밀 심사를 거쳐 컷오프(공천 탈락)시키겠다고 했고 그동안 막말·갑질 등으로 구설에 올랐던 친노·운동권 핵심 인사들이 공천에서 배제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최근 김 대표 주변에선 컷오프가 예상보다 소규모에 그칠 수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현실적 당선 가능성을 봐야 한다는 논리다. 당 지지율이 오르니 이젠 굳이 현역 물갈이 쇼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인지, 운동권 핵심까지 건드리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는 뜻인지 알 수 없다. 말로만 '운동권 청산'을 외치고 실제로는 '곁가지' 몇 개나 치려는 것이라면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당 노선과 체질에도 근본적 변화가 생긴 것인지 불확실하다. '경제 정당'을 기치로 대북·안보 현안에도 전향적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친노·운동권 측은 테러방지법 수정을 총선 1호 공약으로 내걸었다. 테러방지법을 막는 국회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도 9일간 계속했다. 경제·안보 공약 또한 운동권당이던 때에 비해 새롭게 제시한 게 별로 없다.

김 대표의 야권 통합론 제기도 상대 당과 대표를 무시하는 듯한 거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저 혼자의 명분으로 오만하게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운동권 모습이다. 김 대표의 거침없는 언행이 연이어 흥행하는 듯 보이지만, 말로 그친다면 곧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더민주의 체질이 정말 바뀌는 것인지 아니면 선거용 쇼인지는 차츰 드러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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