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전 11시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는 손님 10여명이 음료나 빵을 먹으며 책을 보거나 노트북으로 웹 검색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20대 초반 대학생들이었다. 이들은 49㎡(15평) 남짓한 카페 매장에 놓인 테이블 11개를 모두 쓰고 있었지만 군데군데 빈자리가 보였다. 학생 1명이 4인석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페 사장 김모(43)씨는 "곧 직장인 손님들이 몰리는 점심때인데 커피 한 잔 시켜놓고 7~8시간씩 앉아 있는 대학생 손님 때문에 점심 장사가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카페를 공부방 삼는 일명‘카공족’들이 지난 29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노트북을 보거나 책을 읽고 있다.

이 카페는 임대료와 아르바이트생 인건비 등을 빼면 커피 한 잔을 팔아 400~500원 정도 남긴다고 한다. 김씨는 "적정 수익을 남기려면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엔 테이블을 비워줘야 하는데 카페에서 종일 자리를 차지한 손님 때문에 다른 손님을 받기 어려워 수지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최근 몇 년 새 카페에서 공부를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중·고교생과 대학생이 크게 늘면서 '카공족(族)'이란 말도 생겼다. 여기에 졸업 이후 취직을 하지 못한 취업 준비생들이 해마다 증가하면서 '졸업생 카공족' 수도 부쩍 늘고 있다는 게 카페 업주들의 이야기다. 취업 준비생 이모(27)씨는 "학교에 가면 아직 취직을 못 한 탓에 후배들의 눈길이 따가워 아는 사람이 없는 카페를 아지트 삼아 취업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카페를 공부방 삼는 카공족들은 아늑한 분위기와 개방감 때문에 카페를 찾는다고 말한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대학생 최모(23)씨는 "하품 소리도 내기 민망한 도서관이나 독서실의 답답한 분위기와 달리 아늑하고 공간이 개방된 느낌을 주는 데다 적절한 소음이 있는 카페가 오히려 집중하기에 좋다"고 했다. 카페 안에 흐르는 작은 목소리와 잔잔한 음악이 뒤섞인 '화이트 노이즈(백색소음·적절한 수준의 소음)'가 오히려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주장이다.

지난 2007년 2305개였던 전국 카페 점포 수는 2013년 1만8000개, 2년 뒤인 지난해 말에는 4만9600개로 크게 늘었다. 3만여개에 달하는 편의점 수를 넘어섰다. 이렇게 카페가 늘면서 접근성이 좋아진 점도 젊은이들이 카페를 찾는 이유로 꼽힌다. 카공족이 늘면서 대학가나 영어 학원가 등에는 아예 카페 안에 스터디룸을 만들거나 도서관처럼 대형 테이블이나 칸막이 책상 등을 갖춘 곳도 등장했다.

대전 서구의 한 카페 안 벽면에‘장시간의 공부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게 어떠신지요’라는 글귀가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하지만 최근엔 장시간 자리를 차지하고 공부를 하는 손님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카페가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구로구 신도림동의 한 카페는 최근 출입문에 '평일 오후 7시 이후, 주말과 공휴일 오후 2시 이후엔 독서·컴퓨터·공부 금지'라는 글귀가 적힌 안내문을 붙였다. 이 카페 관계자는 "인근 경쟁 업체에 단골을 뺏기는 걸 감수해야 하지만 대학가 시험 시즌만 되면 카공족 때문에 매출이 30%가량 떨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대전 시내에서 36㎡(11평) 크기의 카페를 운영하는 배모(44)씨도 작년 말 '장시간의 공부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게 어떠신지요'라고 적힌 스티커를 만들어 테이블 곳곳에 붙였다. 배씨는 "오전 내내 공부하다가 점심때 책을 놔두는 식으로 자리를 맡아놓고 외출했다가 다시 돌아와 공부하는 대학생들까지 생겨나 카공족을 안 받기로 했다"고 했다.

인터넷에서도 '카공족'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왜 업주에게 피해를 주고 편하게 대화하러 온 사람들에게까지 눈치 보게 하느냐'는 주장과 '비싼 커피 값 내고 조용히 공부한다는 데 뭐가 문제냐'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