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의 독립정신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1945년 8월 광복과 1948년 8월 건국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은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인가, 1948년 정부 수립인가.

대한민국 건국사의 중요 쟁점들을 놓고 각 입장을 대표하는 학자들이 토론을 벌였다. 2일 오후 서울대 사회대 16동 110호 강의실에서 열린 3·1절 기념 공개 강의에서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는 '광복'과 '건국'을 대립시켜 택일하는 기존의 접근을 비판하며 양자를 조화시키는 제3의 관점을 제시했다. 이어 1945년 '광복'을 강조하는 한시준 단국대 교수(한국사)와 1948년 '건국'을 중시하는 이영훈 서울대 교수(경제사)가 토론자로 참여해 '3색 토론'을 펼쳤다.

2일 서울대에서 열린 3·1절 기념 공개 강의에서 한시준·한상진·이영훈(왼쪽부터) 교수가 1945년 광복과 1948년 건국의 관계 등 대한민국 건국사의 주요 쟁점들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서울대 명예교수 한상진은 누구?]

한상진 교수는 "대한민국 정체성의 양 날개인 '광복'과 '건국'에 대한 이념 혼란이 심각한 것은 광복의 개념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데다 건국 담론에 정치적 동기가 강하기 때문"이라며 동어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논쟁에 대한 해법으로 3·1운동과 광복, 건국을 연결시켜 이해할 것을 제안했다. 3·1 독립선언의 해독을 통해 광복 이념을 재구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임시정부와 정부 수립, 오늘의 상황을 하나로 묶어 해석하자는 것이다.

한 교수에 따르면 3·1 독립선언에 나타난 핵심 정신은 독립 쟁취, 동북아 평화, 세계 문명의 새로운 빛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임시헌법에 녹아들었고, 그것이 대한민국 헌법 제정의 토대가 됐다. 임시정부의 법통(法統)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에 계승된 광복 이념 가운데 일부인 자유·경제 번영·문화 발전은 실현됐지만 통일 국가와 동북아 평화는 미완 상태이며 대한민국의 책무로 남아 있다. 한 교수는 대한민국 건국 시점에 관해서 "임시정부 법통의 정당성과 독립운동의 역사성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법적 효력을 갖춘 사실상의 건국은 1948년에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8·15 경축일을 '건국절'로 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광복이 건국의 규범적 토대이며 역사적으로 선행하고 더 본원적이고 포괄적이기 때문에 '광복절'로 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주장했다.

토론에서 이영훈 교수는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시대를 돌아보면 민주공화제의 기초로서 근대 문명에 대한 대중적 이해가 어느 정도 넓은 기반으로 형성돼 있었는지 회의적"이라며 3·1운동과 임시정부 계승론에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또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동질의 역사·언어·문화·친족·국토 감각에 기초하여 급속히 확산됐지만 이제 역사적 사명을 마감했다"며 "우리를 통일로 이끄는 것은 민족주의를 초월하는 보편적 이념이며, 그것은 개인의 자유·독립·정의와 그것에 바탕을 둔 자유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

한시준 교수는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됐다거나 '건국절'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역사적·법률적·상식적으로 맞지 않을뿐더러 국익에도 엄청난 손실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제헌헌법에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했고, 현행 헌법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라고 하여 현재의 대한민국이 1919년 건립된 대한민국을 이은 것을 명시했다는 것이다. 또 '1948년 건국' 주장은 독도 영유권에도 치명적 손상과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