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일 3·1절 기념사의 절반가량을 남북 문제에 할애했다. 어느 때보다 강경한 대북(對北) 메시지를 실었다. 반면, 대일(對日) 관계 부분은 과거에 비해 양적으로 줄었고 비판적 내용도 없었다. 작년 말 일본 정부와의 위안부 합의 타결, 올해 초 북한의 핵실험·미사일 도발 등 급변한 외교·안보 지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념사의 북한 관련 내용은 지난달 박 대통령 국회 연설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당시 그는 '북한 체제 붕괴'까지 염두에 둔 공세적 압박으로 대북 정책을 전환시키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이번 3·1절 기념사에서는 "핵(核)으로 북한의 정권을 유지시킬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해야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에 대해 "북한이 엄중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단호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며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이지 않고 변화를 거부하는 한 우리와 국제사회의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가운데) 대통령이 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97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독립유공자, 정의화 국회의장 등 참석자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 유엔 인권이사회 보이콧 선언]

이날 박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대화의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이지만"이란 대목에서 '대화' 단어를 한 차례 사용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박 대통령이 '대화'를 거론한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맥락상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한 대화'인 만큼 원론적인 언급에 불과하다는 해석이다. 작년까지 박 대통령은 매년 3·1절 기념사를 통해 북한에 지속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2013년 박 대통령은 "북한이 올바른 선택으로 변화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더욱 유연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했다. 2014년에는 "남북이 작은 약속부터 지키며 신뢰를 쌓아서 통일의 계단을 하나씩 밟아 올라가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으며, 2015년에는 "북한은 더 이상 남북대화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대화를 촉구했다. 하지만 이날 박 대통령은 "그동안 정부는 당국 간 대화와 민간 교류 협력을 강화하고 남북한 신뢰 구축과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해 북한에 많은 지원과 양보를 했다"면서 "이제 기존의 대응 방식으로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꺾지 못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고 했다.

한·일 관계는 이번 3·1절 기념사 가운데 10% 미만이었다. 어느 때보다 짧았고 과거에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일본 정부의 과거사 인식에 대한 비판도 없었다. 한·일 간 가장 민감한 현안이었던 위안부 문제가 타결된 만큼 그럴 필요까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대북 제재, 북한 추가 도발에 대한 대응 등 일본과의 공조(共助)가 필요하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작년까지 박 대통령은 3·1절 기념사를 통해 '과거사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라'며 아베 정부를 압박했었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 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2013년), "과오를 인정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2014년), "역사란 편한 대로 취사선택해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 게 아니다"(2015년)는 등의 내용이었다. 반면, 이날은 "이번 (위안부) 합의의 취지와 정신을 온전히 실천으로 옮겨서 미래 세대에 교훈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면서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서로 손을 잡고 한·일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어갈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미래'에 강조점을 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