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은 건국 역사와 국가 정체성을 민주시민 교육의 중요 부분으로 가르치는데 우리는 현대사를 놓고 사회가 갈라져 싸우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관념과 이론에 사로잡힌 학자들보다 법률가의 균형감각과 경영자의 현실감을 익힌 사람이 역사를 정리하는데 유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법조계 원로인 김인섭(80) 법무법인 태평양 명예대표변호사가 '민주시민을 위한 대한민국현대사-기적은 끝나지 않았다'(영림카디널)를 펴냈다. 그는 고려대 법대를 나와 1961년 제14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뒤 판사로 1980년까지 근무했다. 이후 변호사로 일하다 1986년 법무법인 태평양을 설립해 3대 로펌의 하나로 키웠다. 2002년 변호사 은퇴 후 정진홍·진덕규·유재천 교수, 우창록 변호사 등과 함께 재단법인 '굿 소사이어티'를 만들어 시민운동을 벌여온 김 변호사는 이 책에서 법치주의와 국가건설사관(史觀)에 입각해 한국현대사 연구자들을 비판하고 1945년부터 현재까지 역사를 살펴본다. 그리고 아직도 진행 중인 '근대화 혁명'의 완수를 위한 과제로 역사교육, 헌법교육, 법치교육을 제시한다.

체험적 한국현대사론을 펴낸 김인섭 변호사는“대한민국사는 일국사가 아니라 세계사적 관점에서 봐야 성공의 비결이 제대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김인섭 명예대표변호사는 누구?]

그가 한국현대사 공부를 시작한 것은 2010년이었다. "우리 사회에 법치주의의 정착이 시급하다고 봐서 집중했는데 생각만큼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를 짚어보니 일부 국민의 오랜 저항의식이 있었고, 그 뿌리에는 현대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놓여 있었습니다. 결국 법치를 위해서는 온 국민이 한국현대사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평생 법률만 다뤄온 김 변호사에게는 생소한 분야였기에 주위의 도움이 필요했다. 학계 중진인사들과 정기 세미나를 갖고 관련 저술을 읽기 시작했다. 사생활을 상당 부분 포기하고 매달렸다. 초고를 쓴 다음에는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들었다. 2012년 가을 출판 예정이었지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오해의 소지가 있어 출판을 미뤘다. 원고를 고치고 또 고치다 보니 어느덧 6년이 흘렀다.

이 책은 1945년 이후 세워진 나라 중 산업화와 민주화에 모두 성공한 유일한 국가인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적으로 서술하는 원인으로 민족주의·민중주의·민주주의의 '삼민(三民) 사관'을 비판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근대화 혁명'으로 규정하고, 국가건설(nation building)이란 관점에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국가건설은 안보→경제 발전→정치 발전이 단계적으로 진행되며, 각 시대와 지도자의 역할 분담이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한국현대사의 합리적 해석을 가로막는 주범으로 조선시대 주자학에서 내려오는 근본주의를 지적한다. 자기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도그마가 토론과 논쟁을 통해 역사인식의 차이를 좁히는 걸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현대사를 부정하는 자학적 근본주의 역사관에 맞서다 보니 맞은편도 점점 근본주의 색채를 띠어간다"고 우려했다.

광복 후 70년 역사를 구체적으로 다룬 제2~4장은 김 변호사 개인의 체험이 녹아 있다. 광복과 6·25전쟁의 기억,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 6·29선언과 IMF 외환위기의 회상은 이 책이 먼지 앉은 자료를 뒤져서 쓴 연구서가 아니라 일제시대 말기에 태어나 한국현대사를 몸으로 겪어낸 지식인의 체험적 한국현대사론이란 사실을 일깨운다.

김인섭 변호사는 "'역사를 파괴하고 왜곡하는 것은 가장 큰 죄악'이란 어느 서양 철학자의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이 책이 우리 학계가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한국현대사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