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상 정치부 차장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직후였다. 그는 신당(新黨)에 대해 "낡은 진보와 수구 보수 대신 '합리적 개혁'을 정치의 중심으로 세울 것"이라고 했다. "서로 반대편이 있어야 자기 세력을 유지하는 적대적 공생 관계의 극단적 대립만 남았다"며 여야(與野)의 양극단을 비판했다. 정치 주축에 대해선 "30·40대가 정치의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 대표와 김한길 의원 등 야권의 '비노(非盧) 세력'이 제1 야당이라는 기득권을 버리고 광야에 나선 것은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낡은 진보'라는 벽에 막혀 자신들의 이상(理想)이 좌절했다는 명분도 설득력 있게 들렸다. '야권 분열'이라는 비난의 융단폭격 속에서도 신당 깃발이 꺾이지 않은 것은 이들을 응원하는 유권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야'가 생각보다 더 춥고 배고프고 쓸쓸했기 때문일까. 신당이 '생존'을 위해 자원을 재활용하고 냉동식품을 해동해서라도 요리를 만드는 것쯤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영입 인사들을 보니 한·미 FTA를 반대한다며 단식 농성을 한 분, 새정치민주연합을 향해 "보수화됐다"고 비판하며 진보 정치인으로 재탄생했던 옛 야권 지도자가 포함됐다. 한때 '낡은 진보'의 한 축을 담당했었고 극단의 반대 세력과 공생(共生)한 경력이 있는 분들이다. 천정배 대표는 광주(光州), 정동영 전 의원은 전북(全北)을 담당해 그 힘으로 수도권까지 신당 바람을 북상(北上)시키겠다고 한다. '합리적 개혁'과 '세대교체'의 역동성은 찾기 힘든데 지역에 기반을 둔 표 계산은 확실히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요즘 김종인식 '문화혁명'이 진행 중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을 훈장으로 쳐줬던 과거와 달리 이제 종북(從北) 문제가 있는지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한다. "구조조정이 뭐가 문제냐"는 증권사 대표, "개성공단을 폐쇄할 수 있다"는 통상 전문가가 입당했다. 김종인 대표가 햇볕정책을 '보완'한다며 '레드라인'을 넘어도 조용하다. 지난 10년 눈만 뜨면 '개혁'과 '실용' 또는 '난닝구와 빽바지' 논쟁으로 날을 새웠던 정당이 맞는지 모르겠다. 정당의 문을 열어 김종인 현 대표를 영입한 문재인 전 대표가 왜 안철수 대표의 탈당은 방치했는지 모르겠을 정도다. 현재 상황만 본다면 더민주는 오른쪽으로, 국민의당은 왼쪽으로 크게 움직였다. 왜 싸우고 탈당하고 신당까지 만들었는지 묻는다면 "야권 재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친노(親盧)와 비노(非盧)의 세력 싸움 때문"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정치 개혁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계파 경쟁을 숨기기 위한 미사여구에 불과했다. 안철수 대표는 "생각이 달라도 양당 기득권 담합 구조를 깨기 위해 한곳에 모였다"고 설명했다. '낡은 진보 청산'이라는 불과 두 달 전 이야기는 어느새 사라졌다. 남은 것은 "생각이 달라도 새누리당 독재를 막기 위해 하나가 되자"는 오래된 목소리다. 곧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가 시작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