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가 있는 집’의 대표 메뉴 부대찌개. 국물이 걸쭉한 송탄식 찌개다.

나만 한 꼬마가 잠실 주경기장에서 굴렁쇠를 굴릴 때 나는 텔레비전 앞에 있었다. 성화대에 불이 붙었고 비둘기 떼가 하늘을 날았다. 그때 풀어놓은 비둘기 떼가 날로 번성해 까치를 몰아내고 하늘의 주인이 된 듯했다. 사람들은 '서울 서울 서울'을 노래하며 수도로 몰려들었다. 응답하라고 외쳐야 생각나는 까마득한 1988년의 바로 한 해 전인 1987년에 한 부대찌개 집이 서울로 입성했다. 강남 부대찌개의 전설 '이모가 있는 집'이다.

'이모가 있는 집'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부대찌개의 계보다. 얼마 전 창업주가 타계한 의정부 '오뎅식당'을 대개 부대찌개의 원조로 꼽는다. 하지만 "오뎅식당에서 지금의 부대찌개가 탄생했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될 만큼 부대찌개의 갈래는 간단치가 않다. 먼저 부대찌개 원조라 주장하는 북쪽 의정부식은 국물이 많고 맛도 담백하다. 반면 서울 이남 송탄식은 죽에 가까울 정도로 걸쭉하며 맛도 진하고 강하다. 이 분명한 차이는 부대찌개가 하나의 유일한 기원이 아니라 어떤 동시다발적 문화 현상에 의해 '발명'되지 않고 '발생'했으리란 추측을 뒷받침한다.

이제 다시 강남으로 가보자. 이모가 군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1987년. 당시 '꿀꿀이죽'이라는 이름으로 부대찌개를 팔기 시작했다는 이 집의 명성은 들리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인다. 의심 많은 자는 눈을 크게 뜰지니, 지금은 대스타인 연예인들의 낯설도록 앳된 사진들이 식당 벽에 빼곡하여 빈자리가 없다. 들어보니 '이 집에 오면 뜬다'는 소문이 퍼져 신인 연예인들이 스타의 꿈을 품고 '이모가 있는 집'을 찾았다고 한다.

신인 시절 심은하 사진에 떨린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본 2인분인 부대찌개(1인분 7000원)에 특모듬사리(1만원)를 추가했다. '이모가 있는 집'이니 이모를 찾는 것은 인지상정. 간판에 안광 번뜩이는 사진을 박아놓은 이모를 찾아 고개를 돌리니 이모는 계산대가 아니라 주방 불 앞에 서 있었다. 주름살 깊이를 보니 나이가 아니라 연세라는 단어를 써야 할 듯하다. 이모는 주방뿐 아니라 계산대에도 섰고 일손이 달리면 손님 상도 직접 치웠다.

부대찌개치고는 나오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이유는 주방에서 라면 사리까지 익혀 내기 때문. 라면 한 젓가락을 먹으니 스파게티 익히듯 속심이 살짝 살아 있는 알덴테(Al dente)스타일이다. 이모의 완벽주의적 면모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들어간 통조림 콩과 베이컨, 햄의 양도 "부대찌개나 먹자"고 가볍게 말할 수준이 아니다. 이윽고 국물 한 숟가락. 베이컨의 스모키한 풍미와 김치에서 우러난 산미, 기름진 맛이 밀고 당기고 베고 찌르고 얽히고설키며 혀를 농락한다. 그 맛을 음미하자니 떠오르는 음식은 태평양 넘어 멕시칸 칠리 수프다. 초리소 햄, 콩, 토마토, 멕시칸 칠리, 고수를 그득그득 넣어 불맛 가득 뜨거운 그 음식의 먼 형제를 강남에서 발견한다. 그리고 냄비 바닥이 보일 즈음, 주린 배를 채우려고 처음 부대찌개를 끓였을 이모들의 허기와 유명해지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이 집 부대찌개를 먹었을 신인 연예인들의 욕망, 강남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걷는 인파의 숨 막히는 나날이 찌개 한 그릇에 녹아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