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를 당해 뼈가 부스러진 환자가 병원에 실려 왔다. 의사가 프린터의 '인쇄' 버튼을 누르자 이식할 뼈가 바로 찍혀 나온다. 공상과학(SF) 영화에서 나올 법한 장면이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웨이크 포레스트의대 재생의학연구소의 앤서니 아탈라 교수 연구진은 "3D(입체) 프린터로 찍어낸 실제 크기의 인체 조직이 실험동물의 몸에서 정상적인 기능을 하고, 혈관도 새로 자란 것을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 인터넷판에 실렸다. 논문 저자 6명 중 강현욱, 제임스 유, 이상진, 고인갑 교수 등 4명이 한국인 과학자이다. 3D 프린터는 액체를 층층이 쌓은 뒤 굳혀서 입체 모형을 만드는 장치다. 이전에도 3D 프린터로 혈관이나 신장을 찍어낸 적이 있지만 생체에 이식한 뒤 정상적으로 기능 하는 것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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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에 이식한 귀는 2개월 뒤 검사에서 연골 조직이 정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주변의 혈관도 이식한 귀 조직 안으로 뻗어 있었다. 쥐에 이식한 골격근도 2주 후 시험에서 정상적인 근육 기능을 보였다. 혈관과 신경도 연결돼 있었다. 쥐에 이식한 턱뼈는 5개월이 지나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인체 조직을 인쇄하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굳으면 묵처럼 되는 하이드로겔에 사람 세포를 섞어 잉크를 만든다. 근육을 찍을 때는 근육 세포를, 뼈에는 뼈 세포를 쓴다. 다음에는 노즐로 잉크를 뿌려 조직의 형태를 만든다. 여기에 영양분을 공급하면 세포가 자라나 하이드로겔이 있던 자리까지 채운다. 세포를 보호하고 형태를 잡아주던 하이드로겔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분해돼 사라진다.

연구진은 이번에 3D 프린터용 잉크에 굳으면 딱딱해지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추가했다. 하이드로겔은 재질이 말랑말랑해 인체 조직의 형태를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한 인쇄 과정에서 조직 사이사이에 미세 통로를 만들어 혈관이 생기기 전에도 영양 물질과 산소가 쉽게 들어올 수 있게 했다. 3D프린터가 컴퓨터 단층 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사진대로 바로 인체 조직을 만들 수 있게 만든 것도 이전 연구보다 진보한 것이다. 논문의 제1저자인 울산과학기술원(UNIST) 강현욱 교수는 "앞으로 여러 종류의 세포로 이뤄진 인체 조직도 한 번에 인쇄하는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혈관을 조직 안에 미리 만드는 방법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